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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클락에서 처음으로 겪어본 강진과 트라우마
김선영 BC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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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N 김기령 기자 marketing@gtn.co.kr
- 게시됨 : 2019-05-10 오후 7: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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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던 오후 5시를 넘어선 시각. 갑자기 발밑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지만 사무실 바닥의 흔들림 때문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 ‘이건 지진이다’라는 직감에 직원들에게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외쳤지만 다들 사무실 밖으로 정신없이 뛰쳐나갔고 난 허리를 숙이고 사무실 책상 밑으로 들어가 대피했다.
흔들림은 물리적인 시간 상 10초에서 15초 정도로 짧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천정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어디로 어떻게 대피를 해야겠다’ 등 머릿속으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떠올렸다.
다행히도 지진이 멈췄고 이후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갔더니 지진 당시 나처럼 건물 내부에 있던 40~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와서 울고 있었다.
다행히 건물 내부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고 다들 여진이 발생하진 않을까 30여 분 이상을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여진이 없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본인의 일터로 복귀했다.
지진에 전화도 불통이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재난 상황을 실제로 겪어보니 ‘재난이 발생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지진 발생 한 시간이 지난 후 더 이상의 여진은 없었다. 각자 집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업무를 종료하고 직원들을 빨리 퇴근시켰다. 전기도 정상적으로 들어오고 통신망이 재개됐다. 뉴스에서는 이번 지진이 규모 6.1의 강진이었다고 전했다. 진앙지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클락에서 멀지 않은 잠발레스 부근으로 확인됐다. 지진의 여파로 클락 공항도 피해를 크게 입었다. 비행기 출도착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하루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지인들에게서 안부 연락을 수없이 받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와 누울 수가 있었다. 잠깐의 여진도 느껴졌지만 오후에 겪었던 강진에 비해서는 강도가 지진도 아니라는 생각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지진 발생 며칠 후 잠시 폐쇄됐던 공항도 운영을 재개하는 등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지진 트라우마가 생겼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과 약속이 있어 호텔 20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미팅을 하는 도중에 테이블이 바람에 흔들리자 머릿속이 멍해지고 며칠 전의 지진이 떠올랐다. 이게 지진 여파 트라우마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지인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테이블을 라운지 안쪽으로 옮겨서 이야기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곳 현지 방송에서 보여주는 지진 피해상황을 보며 자연재해나 재앙은 인간의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 주변에 큰 피해 없이 지나가게 된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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