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4년 한 해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웹툰을 각색해서 제작한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가 비정규직 근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이야기로 우리 사회에 회자되면서 마무리 된 것 같다. 미생이라는 말은 바둑용어로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과는 달리 완생 할 여지가 있는 돌을 의미한다. 이 드라마는 불안한 미생이 사회에서 작은 선택 하나에 사석과 완생으로 오가는 냉엄한 현실을 그렸다.
장그래라는 청년이 프로바둑기사 입단이 좌절된 후 대기업에 입사해 직장 동료들 간의 갈등. 동료애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인의 추천을 통해 입사했지만 일반 인턴들과 학벌, 스펙에서 차이가 많이 났고 낙하산이라는 오명으로 장그래는 입사 첫날부터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사회의 큰 벽에 부딪힌다. 그 때마다 바둑으로부터 얻은 통찰력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기적같이 헤쳐 나가지만 결국에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 비록 정규직 전환에는 실패했지만 결국 미생에서 완생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최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이를 이른바 ‘장그래법’이라고 한다고 한다. 내용인즉 정부는 기존에 2년이었던 정규직 사용기한을 35세 이상 비정규직인 당사자가 원할 경우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법안이다. 3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것은 청년 취업자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정부는 또한, 1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던 퇴직금을 3개월 이상만 근무하면 받을 수 있도록 법안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한다.
기업이 비정규직 연장 기간이 끝났는데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퇴직금 외에도 받은 임금 10%에 달하는 이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청년 취업자들의 고용상태변동 및 직장이동 실태'에 따르면 청년층 10명 중 4명은 안정적인 고용상태를 유지하지만 나머지 6명 중 2명은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나머지 4명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에 따르면 이 법안이 장그래를 양산하는 미봉책이라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필자는 지난 투고에서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대하여 피력한 바 있으나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가져온 비정규직 근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부각된 시점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 취업진로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걱정에 앞서 이 드라마를 통한 소득이 있다면 인턴으로 입사한 신입 직원이 복사기가 고장이 났는데 허둥지둥 대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한테 전화를 걸고 있다는 직장 상사들의 실소를 보면서 취업에 자신감이 없거나 졸업을 미루고 취업 재수에 나서 더 좋은 직장에 목을 매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눈을 낮추라고만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미생이 남긴 주옥같은 대사 중에 '우리 모두는 미생이다.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버텨라,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머리에 맴 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근무 시간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처리로 인한 야근, 조직 내 상사들과의 계속되는 술자리 등으로 그야말로 강철체력이 아니면 신입사원으로 살아가기란 쉬어 보이지 않는다. 작년 20대 실업률은 9.1%로 외환 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고 한다. 취업을 위해 해외어학연수, 높은 외국어 점수, 학점 등과 같은 스펙도 중요하지만 복사 잘 하고, 팩스 잘 보내고, 전화 잘 받고, 직상 상사와 소통 잘 해서 잘 버텨 이길 수 있는 장그래로 가르치는 것 또한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박승영
부천대학교 관광경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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