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이라며 승승장구하던 조선업이 무너졌고, 이어 정유, 중공업 등 시대를 풍미하던 거대 산업들이 줄줄이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있다.
서비스와 IT시대의 역습은 기존 산업들을 무참히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여행업은 오히려 소외된 산업에서 뜨는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레저와 여가, 삶의 질 향상이라는 산업 트렌드 확장 속에 여행업이 그 반경 안에 들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여행업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여행업을 문득 바라보면, 여행업이 잘 조직된 모습으로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반인이 볼 때 꽤 다양한 여행사들이 있어 보이고, 공항에만 가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니 마냥 여행업의 잠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여행업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항은 하고 있지만 내부적인 불합리성 역시 계속 커지고 있다. 양극화가 매년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지난해 BSP 여행사들의 발권 실적을 보면, 상위 여행사들과 하위 여행사들의 실적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발권 상위 10개 여행사들이 전체 항공권 발권 시장의 절반가량을 독식하고 있는 형국인데, 이는 상당히 기형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하위 500여개 여행사들은 연간 항공권 매출 100억원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항공권 판매 수익이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세 여행사들의 수익은 대부분 보장 받기 힘든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형여행사들의 파격적인 가격 정책은 중견 여행사들마저 흔들기 시작했다. 상용 전문이든, 트레킹 전문이든, 지역 전문이든 한 때 잘나가던 중견 테마 여행사들은 이제 명함 내밀기가 민망하다. 자본주의가 만드는 냉혹한 현실을 보며 사뭇 공포스럽다는 표현도 나온다.
자본주의에서 자율경쟁과 규모의 경제 추구는 어찌 보면 생존이자 본능이다. 하지만 생태계든 산업계든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세계는 언젠가 한계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백악기 시대 먹이사슬 최고봉에 있는 육식공룡들이 초식 동물을 다 잡아먹고, 숲을 다 파괴하면 결국 자기도 굶어죽게 되는 이치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자비가 욕망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게 자본주위고 욕심을 부리는 것을 정죄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자본주의에서 거대한 부만큼 최고의 '선(善)'은 없다.
배가 고픈 육식공룡에게 생태계 다양성을 고려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고리타분한 논제다. 당장의 허기를 때우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육식공룡이 광폭하게 먹이감을 찾아 어슬렁거릴 때는 익룡이 되어 날아다니든, 잠시 움츠리고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양재필 차장> ryanfeel@g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