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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9호 2026년 05월 18 일
  • [그땐 그랬지! 여행전설 김종원] 평생 항공·여행인으로 살다



  • 류동근 기자 |
    입력 : 2016-06-27 | 업데이트됨 : 1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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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항공·여행인으로 외길인생 50년을 걸어온 김종원 세종대 교수.

 

그는 66년 국영인 대한항공공사에 입사해 항공업을 배웠다. 젊은 나이에 신문사 기자가 되길 희망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대한항공공사에 시험을 보게 됐고, 38대1의 경쟁을 뚫고 항공업에 첫 발을 디뎠다.

 

88년 한진관광으로 자리를 옮겨 여행업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현재 현업에서 활동 중인 몇 안되는 항공·여행업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그의 나이는 73세.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한 듯, 오늘도 그는 후학양성에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민영화된 대한항공에서 그는 젊은 혈기를 맘껏 불살랐다. 최연소 팀장을 맡아 에어프랑스와 제휴해 파리를 취항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파리·런던지점장과 중동지역 본부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대한항공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대한항공 입사이후 김교수는 3번의 사표를 냈다. 마지막으로 사표를 낸 것은 87년 말 한진관광으로 발령이 나면서다. 그의 소신은 “항공업 발전의 역군이 되려고 항공인의 길을 걸었지 여행사에서 일하려고 입사한 게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조중훈 사장은 직접 김교수를 불러 “처남(김성배 한진관광 사장)이 김본부장(당시 중동지역본부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오케이 했으니, 딱1년만 한진관광에서 일하고 오라”고 설득을 했다.

 

조중훈 사장은 3번씩이나 같은 말을 해서 답을 듣고자 했으나 김교수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다음날 송영수 인사부장이 와서 “당신이 모자라서 한진관광으로 가는 게 아니고, 스카웃트 되서 가는 건 데 왜 사표를 내느냐?”고 반문을 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1개월간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을 떠났다. 1개월 후 김성배 사장께서 출근 안 해도 좋으니 대신 저녁을 같이하자고 제안한다. 그날 저녁을 같이하면서 결국 김교수는 김성배사장의 설득에 못 이겨 한진관광으로 출근을 결심하게 된다.

 

김교수는 한진관광에서도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저력을 발휘한다. 그는 지금도 “한진관광에서 12년 근무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내 인생에 한진관광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며 항공사에서 갈고 닦은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사에서 소신껏 일하다보니, 어느덧 19년째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교수는 스스로 운이 좋은 남자라고 자평한다. 항공사와 여행사에서 쌓은 경험들이 현재 교단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 대견스럽고 만족스럽다. 그래서일까. 김교수의 말은 늘 힘이 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그는 약관(弱冠)의 눈빛을 지녔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지 지금도 30∼4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또렷하게 기억에 떠 올린다. 당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 이름과 직책에서부터 그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반세기동안 여행·항공업에 몸담으면서 그는 터득한 것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노력만으로 안 된다는 것. 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 대한항공 근무시절 한 일화에서 그는 한 가지 깨달음을 갖게 된다. 당시 모 그룹은 돈벌이만 되면 모든 영역에 사업을 확장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던 때 전경련 부회장이던 조중훈 회장은 “대그룹이 할 일이 있고 중소기업이 할 일이 있다”며 모 그룹 총수에게 뼈있는 한마디를 남긴다.

그 때문에 모 회장과 트러블이 생기게 됐고, 웃지못할 신경전까지 빚어지게 된다. 그 발언으로 모 그룹 회장은 그룹 계열사 대표들을 소집해 ‘지금부터 대한항공을 타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곧바로 조회장도 계열사 대표들에게 ‘모 그룹에서 만든 자동차는 타고 다니지 말라’며 맞불을 놓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80년대 후반의 그룹사 대표들의 힘겨루기 사건이다.

이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김교수는 조중훈회장으로부터 ‘정도’의 가르침을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늘 왕성한 활동으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김교수의 건강비결은 ‘걷기’다.

 

대한항공 퇴사로 차를 반납한 후 지금까지 한번도 자가용을 몰아본 적이 없다. 집에서 세종대까지 약 3.2km를 매일 걷는다. 버스 정류장으로 따지만 4코스나 되는 거리지만, 건강을 위해 하루 평균 1만5000보를 걷는다.

 

<류동근 국장> dongkeun@g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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