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은 1970년대 반도호텔이 있던 자리다. 그 호텔 106호에 세방여행사가 있었는데 그해 5월 입사를 했다. 입사 후 받은 월급은 고작 5만원. 10여명이 근무할 정도로 좁은 사무실이었는데 사세확장으로 현재 프레지던트호텔 맞은편 부산은행 1층으로 옮겼으며 그 후 현 동아빌딩 2개 층을 쓰게 됐다.
70년대 초중반 여행사 직원들이 하는 일은 매우 단순했다. 여권 및 비자발급, 공항 샌딩 등이 주였다. 그중 여권 발급이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누가 여권을 빨리 뽑아내느냐에 따라 직원의 능력이 좌우되던 때였다.
지금이야 여권발급신청서 한 장이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70년대 여권을 발급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만 하더라도 본인의 호적등본과 인감증명서, 병력신고서, 신원진술서는 기본인데다 2명의 신원보증인의 연대날인이 필요했고 여기에 보증인들의 인감증명서까지 첨부해야 했다. 또 세무서에서 발행하는 납세증명서까지…. 이 서류들을 모두 큰 봉투에 넣으면 굉장히 두툼했던 기억이 새롭다.
여권신청을 하기에 앞서 소양교육을 받는다. 이른바 정부가 실시하는 반공교육. 일본에 가면 조총련을 조심하고 해외 나가서 북한 공작원의 포섭을 조심하라는 내용들이다. 이 교육의 수료증이 있어야만 여권신청이 가능했다.
70년대는 또 부부가 동시에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다. 국가 안보상의 이유와 외화절감 등 여러 가지 사유로 부부 동반 해외출국은 철저히 금지됐다.
70년대 중후반부터는 단체여행에 대한 볼륨도 커져 대형단체가 해외로 나가려면 안기부의 검열(?)까지 받아야 했다. 안기부에 단체여행자 명단을 제출해 심사 후 허가를 받아야 외무부에 여권신청이 가능했다. 100명을 신청하면 절반정도가 안기부 허가를 받는 경우다 다반사였다.
세방여행은 77년부터 로타리, 라이온스, JCA 등 사회단체들의 해외여행 모객이 크게 증가했다. 당시 여권신청 후부터 발행까지 열흘정도 소요됐지만 단체의 경우 여권발급자가 지문만 찍어주면 나머지는 여행사 직원들이 일일이 여권신청에 제반되는 모든 서류를 수기로 작성해야 했다. 업무량이 엄청났다. 심지어 여관이나 호텔을 잡아놓고 며칠씩 서류작성을 하던 기억도 난다.
당시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던 때다. 보통 해외에 나가면 30박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해외 나가기가 쉽지 않던 때라 서울을 출발해 미국-유럽-동남아를 거쳐 귀국하는 한 달간의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여권에는 목적지만 추가하면 여러 나라 여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여권발급이외 각 국가에 입국 시 필요한 비자들도 따로 받아야 해 출국 전 여행사직원들의 업무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당시 월급이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였으나, 단체를 인솔해서 나가면 월급의 수십?수백배 이상 벌어오는 경우가 허다해 모두들 인솔자로 나가는 것을 선호했다.
말이 한달이지 한 달 이상 여행객들을 인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부자들이고 지방의 유지들이여서 불편함이 없게 생활하다 낮선 해외에 나가니, 모든 스트레스는 인솔자의 몫이었다. 항공기가 연착되거나, 예약이 잘못되어 여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멱살을 잡히거나 빰을 맞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행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70년대 해외여행은 지나가고 80년대 들어 조금씩 진화, 발전해 가는 모습이 엿보였다.
<류동근 국장>dongkeun@gtn.co.kr
전용필(田溶泌)은....

1972년 5월 (주)세방여행사에 입사한다. 불모지와도 같던 여행시장에 첫 발을 디딘 그는 입사 후 80년부터 2년간 회사에 다니면서 경희대 호텔전문대학에서 여행실무론을 강의하는 등 강사로도 왕성한 활동을 한다. 이후 세방여행 사우디아라비아 지사에 파견 다녀 온 후, 89년 8월 (주)삼희관광 영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93년 8월 ‘귀한사람들이 모인 집’을 뜻하는 진우(珍宇)여행사를 창업,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2년부터 2년 간 업계 가장 오래된 모임인 ‘관우클럽’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