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1970년대 여행시장 분위기
2 해외여행자유화 이전 여행업계
③ 항공사와 여행사의 관계
④ 에피소드와 교훈
80년대 초반부터 패키지 광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70년대 중후반 사회단체들의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서서히 해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83년 1월부터 50세 이상 국민의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89년부터 해외여행이 완전히 자유화되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83년도가 해외여행 자유화 원년인 셈이다.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83년 오세중 세방여행사 회장은 ‘아리랑 하이라이트’라는 패키지브랜드를 선보이고 2단 광고를 시작했다. 전화문의가 늘어나자 일명 ‘교환수’를 둬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고, 이들 교환수들은 아리랑하이라이트 부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패키지 브랜드로는 세방의 아리랑 하이라이트에 이어, 한진관광의 KAL월드투어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후 대한여행사의 점보투어, 고려여행의 썬투어, 서울항공의 나드리 세계여행, 세중의 해피투어, 롯데관광의 훼밀리투어, 아주관광의 레인보우투어 등이 패키지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업체들이다.
전용필사장은 82년부터 2년간 사우디지사 근무를 마치고, 85년 초 세방여행에 복귀했다. 70년대 여행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 전사장은 여권이나 비자발급 등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패키지와 상용단체 등을 핸드링 하는데 분주한 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80년대 중후반에는 패키지 부서 직원들 중 절반가량이 대리점 세일에 치중하는 등 과당경쟁을 펼쳤다.
패키지 여행사들의 대리점세일이 강화되자 당시 지방의 중소여행사들은 대형여행사의 패키지상품을 판매하게 되면 자사의 고객들을 빼앗긴다는 우려가 높아 대리점 세일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패키지사들의 과당경쟁이 위험수위를 넘어서면서 전국망을 갖추지 못한 업체들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패키지사들은 당시 신문광고를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바로 도태됐고 신문광고를 많이 내는 업체들만이 파죽지세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 결과 일부 몇몇 여행사들만 생존하고 기라성 같던 패키지 사들의 브랜드는 서서히 여행시장의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세방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사장은 89년 해외여행이 완전 자유화되면서 삼희관광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게 된다. 당시 강봉희사장이 대표였는데,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여행사다보니 일단 재력이 뒷받침돼 성장가능성이 높아보였고 해외여행에 대한 전문가는 없는 상태라 삼희로 옮겨갈 생각을 굳힌다.
그러나 15년 가까이 세방여행에 근무한 터라 오회장이 의중도 중요했다. 매주 1회씩 동교동 본사에서 중역회의가 있는데 어느날 회의석상에서 이직의사를 밝혔다. 만류가 지속됐으나 결국 오회장 결재를 받고 삼희관광으로 옮기게 됐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전사장은 삼희로 오면서 3가지의 굳은 약속을 하며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첫째, 일을 제일로 잘하자. 둘째, 부지런하자. 셋째, 세일즈 물량을 가장 많이 하자였다.
그룹차원에서 보면 매출을 올려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회사를 키우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전국 주요도시에 지사를 설립하고 패키지 브랜드도 ‘빙그레투어’로 지어 광고를 시작하는 등 회사 수익을 올리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빙그레투어는 10위권 밖에서 허덕이다 5위권 내로 성장하는 눈부신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신생업체들의 과당경쟁과 치열한 광고전, 저가덤핑이 난무해 지면서 빙그레투어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됐다.
빙그레투어는 그나마 자금사정이 큰 문제가 없었으나 90년대 초반 들어 적자로 돌아섰고 그러한 여파로 전사장은 93년도에 진우여행사를 설립하게 됐다.
<류동근 국장>dongkeun@g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