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업계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했던 방송 마케팅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13년경부터 ‘꽃보다 할배’를 기점으로 봇물 터지듯 출현했던 여행 방송들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 하고 계륵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부작용을 잠재워줄 유력한 처방전 중 하나는 국내보다 앞선 해외 선진국들의 방송 트렌드를 읽는 일이다. 다수의 한국 방송은 선진 방송 콘텐츠와 포맷을 벤치마킹하기 때문에, 국내 인기 콘텐츠 중 일부는 해외보다 한 박자 늦게 떠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해외 선진 방송국의 현 트렌드를 파악하면 향후 국내 방송의 콘텐츠 방향성과 한국인들의 미래 관심 포인트를 예측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세희 기자> ksh@gtn.co.kr
<조재완 기자> cjw@gtn.co.kr
얼마 전까지도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TV 방송 마케팅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2013년 7월5일 나영석PD가 제작한 ‘꽃보다 할배(프랑스, 스위스편)’를 시작으로 ‘꽃보다 할배’ 대만편이 전편에 비할 데 없는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방송 마케팅이 가장 강력한 도구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이 방송됐던 지난 2013년은 업계가 방송의 위력을 실감한 한 해이기도 했다. 상반기 ‘꽃할배’, 하반기에는 ‘꽃누나’들의 방송 영향으로 대만과 크로아티아가 각각 286%, 158% 증가했고,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 역시 지난 2014년 1,2월 스페인 여행 예약이 이미 전년 동기 대비 170% 이상 늘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방송 마케팅의 효력은 하루가 멀다하고 제작되는 여행 방송들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분위기다. 여행사나 항공사가 예전만큼이나 방송 관련 상품들을 출시하지 않거나 해당 여행지의 항공 노선 증설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A 동남아 여행사 관계자는 “패키지 여행사를 비롯한 많은 업체들이 ‘꽃보다’ 시리즈를 저작권없이 무작위로 내세우거나 관련 상품을 만들었지만 소셜커머스를 병행해도 적자를 발생시켰다”며 “애초부터 방송사와 여행사가 수익을 목적으로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면 좀 더 나은 여행 방송 문화가 정착했을 것이다. 오로지 단기적 성과를 위해 방송 타이틀을 어설프게 가져온 패키지 상품들로 열악한 업계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여행 방송들이 갈수록 FIT여행 트렌드를 따르는 것 또한 업계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여행 관련 방송사들이 국내 패키지 사에 최적화된 일명 ‘영프스이(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7박9일’같은 전형적인 상품에서 벗어나 라오스, 페루, 아이슬란드, 나미비아 등 FIT화된 특수지역을 선정해 상품 개발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여행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해 봤던 업계 관계자는 “방송 제작자들은 더 이상 대만, 서유럽같은 대중화된 여행지보다는 특수한 FIT 여행지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며 “여행사가 더 이상 방송 관계자들의 비용만 덜어주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방송사와 협업해 기획력에 대해 재고하거나 탄탄한 구성단계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 여행 프로그램이 본래 기획 의도, 콘셉트, 정체성을 상실한 채 과도하게 캐릭터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 역시 방송 마케팅의 의존도를 점점 떨어뜨리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꽃보다’ 시리즈는 여행지의 풍광이나 문화적 체험 등은 뒤로 하고 출연자들에게 부여된 캐릭터로 재미를 추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촬영을 마친 ‘꽃보다 청춘’의 아프리카 나미비아 편 또한 성황리에 종영한 같은 방송 제작사의 ‘응답하라 1988’ 주인공들을 멤버로 내세워 방송이 채 되기도 전에 캐릭터 중심으로 얘기가 흘러간 모습이다. 출연진들의 상식을 넘어선 실언이나 돌발 행동 등 방송에서 보여주는 미성숙한 여행 문화 또한 방송 마케팅의 효력을 떨어뜨리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우리나라 방송 트렌드의 민낯은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재 한국 방송계에서 불고 있는 미식 열풍이 가장 좋은 예다. 미식 프로그램과 식도락 여행 열풍은 지난해에서야 한국에 상륙했지만 이미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수년 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다. 일본 미식 프로그램 역시 높은 인기를 끌었고, 일본에서도 식도락 여행, 쉐프 레스토랑 투어, 요리 체험이 일본 여행업계에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현재 이들 국가에서 시들어진 미식의 인기를 대신 꿰찬 아이템은 ‘인테리어’와 ‘자연’으로 꼽히고 있다. 1월 넷째 주 기준 영국 BBC 편성에서는 집과 인테리어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11개, 자연 및 원예, 조경 관련 프로그램이 무려 44개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스러움’에 대한 관심은 예능 프로그램들의 배경은 시골과 해안, 전원 주택으로 이끌었고, 전원 속 B&B와 게스트하우스 서바이벌 콘테스트 프로그램까지 출현했다. 여행 프로그램 또한 원시적인 대자연과 레져 스포츠를 주로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이라는 주제에 한발 나서 원예와 조경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높아져 이제는 인테리어와도 접목되는 양상이다.
시청자들의 시선 역시 미식에서 자연과 전원, 집과 인테리어로 따라 옮겨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여행업계도 대자연 탐방, 셀프 인테리어와 시골주택 탐방과 관련된 세미 패키지 등을 다양하게 만들어나가며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 역시 지난 1월 단체로 무리지어 시골길을 걷는 ‘램블러(Rambler)’들이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하며, 여행 트렌드가 자연의 향취를 직접 체험하는 경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린 바 있다.
본지 조사 결과 미국 역시 주요 공중파 TV채널 7개의 155개 프로그램 중 어드벤처/자연/조경 프로그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인테리어 프로그램이 높은 인기를 끌어, A&E 채널에서는 인테리어 아이템만 전체 프로그램의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부 유력 관계자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 여행업계가 국내 방송계의 뒤꽁무니를 좇을 것이 아니라 해외 트렌드를 주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국내 방송계가 해외 트렌드를 들여와 새롭게 제작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 트렌드를 먼저 주시하면 선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S.I.T 여행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헌집줄게 새집다오’, ‘내방의 품격’ 등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으면서 한국 역시 셀프 인테리어의 인기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이 역시 해외 트렌드가 유입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30~40대 기혼 여성들을 대상으로 북유럽의 차별화된 투어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