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흙수저, 신의아들, 열정페이, 다포세대, 헬조선…이러한 비관적인 단어가 대한민국 청년들의 중심키워드가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직과 정규직전환이 쉽지 않고 인턴생활만 반복하는 취준생들은 스스로를 ‘호모인턴스’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가 부모의 경제력이 불공정한 게임이 시작되는 곳으로 바뀌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의 불평등에 좌절하며, 없는 집안에 태어난 불운을 한탄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사회다. 과거의 음서제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평범하기만 해도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줄고 이제는 사람마저 한우의 등급처럼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OECD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을 받는 나라지만 90%의 비 기득권층은 10%의 기득권에 밀려 그것을 타협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버는 사회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우위를 보이기 쉽고, 중요시 여기는 스펙 안에는 ‘인맥’이 포함돼 있다. 본래 인맥이란 그 사람의 인간관계의 척도를 일컫는 좋은 단어이지만 현 우리 사회에서는 그 안에 학연, 혈연, 지연의 긴밀함과 중요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능력에 따라 공평한 기회’를 가질 권리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중세의 신분사회와 다를 게 없다. 수평적인 계층이동이 활발히 일어나야만 사회 구성원들은 긍정적인 경쟁으로 인해 동기부여가 가능하다. 건강한 경쟁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살맛도 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한동안 SNS를 뜨겁게 달군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탈조선’의 꿈을 이룬다. 타국에서 고된 일을 하며 어학원까지 다니지만 주인공 계나는 그곳에서는 평등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계나의 말이 참 가슴 아프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나라가 나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지켜주었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세금내고 교육받고 할 건 다 했어’ 우리 모두가 어느새 이 말에 공감하고 있다.
최근 스페인은 기존의 양당체제가 무너지고 4당 체제로 재편됐다. 스페인 국민은 기득권만 움켜쥔 채 민생을 외면했던 낡은 정치권을 산산조각 냈다. 총선 후 혼란과 난항에도 재선거는 싫다고 말한다. 민생문제가 정권교체로 이어진 것이다. 노르웨이는 자신이 부자임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부자는 성격이 나쁘고 거만하다는 선입견이 많아서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부자라도 아이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노력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한국은 어떠한가. 곧 4.13총선이 다가온다. 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호객한다. 이민이 근본해결법이 아니라면 한국에 남아 대한민국을 바꿔야만 한다.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층의 절대적 다수가 무기력감과 좌절감을 물심양면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이제 사회구조적 문제가 확실하다.
최근 모 제약회사 오너의 결단에 많은 국민이 놀라고 박수를 보냈다. 시가 1100억 원 가치의 주식을 같이 허리띠 졸라매고 이뤄낸 성과에 대한 고마움으로 전 직원에게 증여한 것이 연초에 국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의 주식증여는 금수저를 녹여서 직원들과 상생을 몸소 실천한 예라 하겠다.
‘65%:0%’ 이 비율은 세계 400대 부자의 자수성가를 대한민국과 비교한 서글픈 숫자다. 더 이상 당연하게 아프니까 청춘이라 꾸짖지 말고, 우리세대의 청춘시절을 곱씹으며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된다 하지 말자. 약자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승리의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와 기성세대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본질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변하지 않는 순리. 이것만은 기억하자. 다이아몬드도 금도 은도 결국 모든 것은 흙 속에서 태어나고, 사람도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흙수저라는 것은 무엇이든 탄생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비전 있는 원료를 지닌 수저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