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로를 달려 일산에서 서울 쪽으로 오다 보면, 길옆에 군데군데 아담한 화분에 담겨 하늘을 꼿꼿하게 향하고 있는 강렬한 주홍색의 꽃이 있다. 꽃말이 ‘명예’와 ‘영광’이며, 옛날에 양반집 마당에서만 키웠다던 나팔꽃과 비슷해 여름 꽃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한강을 방비하는 철책이 긴장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아름다운 꽃과 철책선.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지만 이 땅의 평화와 분단 상황이 공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참 절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주하는 차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그 자태와 기품에서 꽃말처럼 그 만의 ‘명예’를 잘 드러내고 있다. 여러분은 이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비목’이라는 가곡은 여름밤에 듣는 것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작사자 한명희가 군 생활 때 강원도 화천에서 잡초 우거진 양지바른 산모퉁이를 지나가다, 십자가 나무가 있는 어느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보고 ‘전쟁의 상처와 적막감, 그리고 고향에 대한 애절한 향수’를 그린 노래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을지도 모르는 이가 이념과 탐욕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의 전쟁 놀음에 결과도 모른 체 한 시대의 희생자가 됐다. 그리고 조국을 위한 무명의 헌신을 내려놓고 이제 바람 불고 새가 우는 아무 인적도 없는 산모퉁이에서 평화롭게 안식을 하고 있는 모습에 눈이 흐려진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에는 뜨거운 여름에 있었던 전투에서 많은 이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아스팔트 위의 열기와 건물에서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는 거리를 더욱 더 뜨겁게 만든다. 거리의 꽃들과 나무들도 처져있고, 휴가를 가지 못한 사람들의 뒷모습은 더 지쳐 보인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도 처진 어깨로 걷고 있다. 이 뜨거운 여름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에서 여름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에 가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있다고 한다. 휴가라는 마음의 여유가 더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바쁜 일상에 지친 육신의 무게를 내려놓는 시간이며, 갈급한 영혼에 양식으로 채우는 정화의 시간이 된다. 또한 그것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곳은 어떠한 곳이라도 좋다. 거실의 편안한 소파에 누워, 도시의 한적한 카페에서, 대형서점의 어느 구석 계단에서 앉아, 흔들리는 버스 안이나 지하철에서, 어느 시골의 외딴길에서 차를 멈추고, 파도치는 어느 해변에서 읽어도 좋다.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을 이해하며,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삶의 간격을 조정하며 비움을 통해 새로움으로 채우는 과정이 된다. 또한 과거의 인물과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고, 현재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 본다. 모든 국가와 민족이 자국인의 관점에서 사는 것이 아닌 세계인의 관점으로 살아야 역사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배우고,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책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나는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지 이 계절이 좋다. 땀을 흘리더라도 두꺼운 옷을 안 입어서 좋고, 무엇인가 배우는 시간이 있어 좋다. 또한 나의 의지를 내려놓고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이 여름이 좋다. 산과 바다와 뜨거운 태양과 태풍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고 의지할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계절이 좋다. 마치 여름에 농부가 벼를 심고, 절대자의 은총을 기다려 가을에 알곡이 맺히기를 바라는 간절함처럼.
앞에서 언급한 꽃의 이름은 능소화이다. 나는 이 꽃을 좋아한다. 누구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아하! 이 꽃이구나!”하고 금방 알 것이다. 또한 동네 아파트 길에서, 등산하던 산길에서 흔히 보았던 꽃일 것이다.
여름이 다 가기 전, 꽃과 음악,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이 여름을 즐기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