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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9호 2026년 05월 18 일
  • [그땐 그랬지! 김창균사장 編] 일본 보따리 상인 탓에 IMF한파 극복



  • 류동근 기자 |
    입력 : 2016-08-11 | 업데이트됨 : 5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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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람 잘 날 없었던 초창기  
2. 상용업체 선두주자로 활약
③ 여행인으로 지내온 45년
④ 에피소드와 교훈

  

 

1997년 IMF로 여행시장은 쑥대밭이 됐다. 영원할 것 같았던 여행사들은 힘없이 쓰러지고, 빚더미에 오른 여행인 들은 야반도주를 하거나 회사를 반으로 줄이는 암울한 시기가 97년 말 여행 시장이었다. IMF보다 더한 우여곡절을 몇 차례 겪은 탓에 이러한 위기가 위기 같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멀어졌던 상용거래처, 남대문 시장 보따리상인 등 여러 생각을 하던 중, 먼저 보따리상인 여행에 집중하기로 정했다. 헐값에 내어놓은 잡화들을 일본상인들이 눈독을 들였고, 자연스럽게 이 물품을 일본에 전달하게 될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중구 회현동에 남대문 보따리 상인을 대상으로 항공권 전문판매업체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당시 항공시장은 IMF한파로 인해 탑승객보다 승무원들이 더 많이 타던 때였던 것 같다. 항공사에 좌석을 요청하면 즉시 받을 수 있었고 경쟁력 있는 요금 또한 받았다. ‘일본 보따리시장’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가는 타 여행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보따리상인은 일본상인들이 주문한 의류나 식품, 잡화들을 당일로 직접 항공을 통해 배송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항공권 판매를 비롯해 항공권 판매수익도 덩달아 증가했다.


당시 보따리 상인을 대상으로 한 항공권 판매시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일본항공 등에서 일본 전 지역 보따리 항공권판매에 적극적이었다. 항공요금도 특가로 저렴하게 제공해 줬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1인당 수하물을 50kg으로 후하게 적용해 줘 경쟁력이 있었다.


국내 방송에서도 이들 일본 보따리 상인들을 보도하면서 외화가 부족한 시기에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라고 치켜세웠고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보따리 항공권 판매에 큰 일익을 담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보따리 상인들을 위한 항공권 판매가 항공권 홀세일이나 다름없었다. 이 항공권을 여행시장에 풀어 항공 홀세일을 시작했더라면 아마 오늘날 항공 홀세일러 시장에 선두주자가 돼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본인은 여행시장을 존중하고, 상도의상 여행시장의 질서를 지켰다.


요즘 할인항공권 판매업체등의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노라면 시장이 왜 이렇게 변질 됐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IMF를 극복한 이후 여행시장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패키지시장을 비롯해 상용시장 역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고, 동원여행사도 이때부터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동원여행은 소위 국내 30대 여행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많은 항공사로부터 우수 판매 대리점 수상도 받았고 여기저기서 팸투어 등에도 많은 초대를 받기도 했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여행시장에서 위기상황을 피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한 탓에 동원여행사는 상용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1985년 5월 동원여행사 창립 이래 가장 호황을 누린 때가 아마도 IMF시절부터 2000년대 초중반이 아닐까 싶다.


<류동근 국장> dongkeun@g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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