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구(虎口)라는 말은 우리 일상에 흔히 쓰인다. 본디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지만, 뭔가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하적 표현일지 모르나, 여행업계가 전 국민의 호구가 된 느낌이다. 한마디로 호구를 잡혔다는 표현이 옳을 듯하다. 우리 업계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을 접하다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 전 스무여 명의 고위 공무원을 데리고 산업시찰 명목으로 미국여행을 인솔해 다녀온 한 여행인솔자(TC)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1인당 수백만 원의 국비를 들여 열흘간 다녀온 미국여행. 그 TC의 눈에는 국민이 낸 세금이 이런 식으로 줄줄 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방문지 시찰은 그저 허울뿐인 것이었고,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쇼핑과 카지노에 빠져있는 그 고위직 공무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더란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국비로 오다 보니 물 한병, 커피한잔도 자기 돈으로 사먹지 않으면서 일정을 옮길 때마나 쏟아내는 불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TC는 여행인솔 내내 하루 두세 시간 새우잠을 자는 것은 기본이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그 공무원들의 음식투정에 때를 놓치기 일쑤였고, 끼니를 거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새벽 3∼4시에도 룸으로 전화해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등 온갖 잡심부름을 다 시켜 마치 자신이 하녀가 된 듯 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온라인이 발달하고 여행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불어나는 요즘, 누가 고객이고 누가 여행사 직원인지 조차 헷갈릴 정도다. 고객이 오히려 여행사 직원을 가르치려 드는 시대가 되었다. 비단, 이 TC의 경험담을 통해 여행업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의 일부분을 조명해 본 것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객이라고 다 왕은 아닌 것이다.
무조건 고객이 되면 간담을 묻어 놓고 모든 것을 수용하려는 우리 업계가 깊은 자성을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여행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부족함에서 오는 결과인 셈이다. 5000만 고객이 여행사를 호구로 알기까지 우리 여행업계가 그렇게 만들었고, 또 그렇게 행동 해 왔음을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겨울 성수기 모객이 시작됐다. 매년 이맘때면 기대반 우려반의 심정으로 겨울시즌을 맞이한다. 올 겨울에는 그래도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 역력하지만, 5천만의 호구보다는 5천만의 타짜가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