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이번 912호부터 박종필 PAA 회장의 ‘3000㎞ 프랑스 바이크 여행기’를 5회 동안 연재합니다. 여행기에는 지난 여름 박종필 회장이 직접 계획, 실행한 바이크 라이딩 일화와 에피소드가 실릴 예정입니다. 바이크 여행기를 통해 획일적인 여행 상품의 한계를 벗어난, 개별적이고 이색적인 상품 구성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따라주는 포도주의 향에 취해 시작된 조셉의 옛날 알프스 방랑기에 혹해서, 올해를 넘기지 말고 이번 여름 함께 떠나자는 즉흥 계획을 세웠다. 15일간 바이크로 알프스와 지중해를 종단한다는 조금 무리한 여행계획에 아무런 생각 없이 나도 선뜻 따라나선 것은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아마 필자가 너무도 잘 아는 통상적 해외 여행의 패턴에서 벗어난 신선한 도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친구 조셉과 도명, 우리 셋은 몇 주 후 즉흥 계획대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6년 8월12일 파리행 비행기에서 여행 준비로 그 동안 못잔 잠을 자느라, 13시간의 비행은 눈 깜짝할 사이 끝나버렸다. 파리에서 1박 후, 새벽기차를 타고 스위스 제네바 건너편 프랑스 국경도시인 안마쓰(Annemasse)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반. 주일을 맞아 카페에 모여 앉아 떠들고 있는 프랑스인들 틈에 끼어 에스프레소 한잔을 즐기다 보니 그제서야 우리에게 바이크 대여를 해줄 프랑스인이 허겁지겁 나타났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바이크를 빨리 보고 싶었기에 에스프레소 향에 흠뻑 취한 친구들을 어렵사리 일으켰다. BMW GS 1200 3대가 기다리고 있는 바이크대여소에 도착하자마자 안장 높이를 확인했다. 한국에서도 BMW GS 1200를 타고 있지만 높이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특별히 깎아 만든 낮은 안장을 얹고 앉으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15일간의 여정에 필요한 30여 가지 준비물을 3개의 GS 캐리어에 쑤셔 넣고 3명의 헬멧에 장착한 SENA 블루투스 무전기를 재차 확인하고 바로 떠났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조형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는 도명의 딸이 살고 있는 안마쓰 시내 정원이 예쁜 집. 15일간 못 먹을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본격적인 바이크 여행을 시작했다.
첫 행선지는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Mont.Blanc, 해발 4810m)이 반겨주는 샤모니(Chamonix Mont.)였다. 바이크 여행 첫날에 무리 없는 약 100㎞의 여정이었다. 깊게 파인 샤모니 계곡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는 코스는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름바캉스 기간이지만 붐비지도 않고 도로상태가 너무 좋아 1시간 반 만에 샤모니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바로 몽블랑이 바로 앞에 보이는 에귀드 미디(Aiguille du Midi, 해발 3842m)까지 거의 수직으로 상승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일이었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보기 위해서였다. 만년설에 덥혀 <백색의 산>이란 이름을 가진 몽블랑과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보쏭 빙하, 동서남북 사방에 산재한 3000m 이상의 고봉과 눈부시게 흰 눈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거대한 알프스의 아름다움 덕분에 우리 셋은 13시간의 비행, 100여㎞의 바이크 라이딩과 시차에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구름보다 높은 바위산 정상에 오르고 나니 산소부족으로 천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몽블랑의 아름다운 자태에 한껏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높고 푸른 하늘과 10도 안팎의 기온,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 덕분이었다. 다음 기회엔 몽블랑과 하나가 되기 위해 꼭 직접 배낭을 짊어지고, 등반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로 가슴이 뭉클거렸다.

이번 바이크 여행의 단장은 나였지만, 실질적 라이딩 리더는 조셉이었다. 도명이는 후미에, 나는 중간에서 달렸다. 조셉은 바이크 여행 여정을 바이크용 GPS(Tomtom rider)에 입력하면서 우리 둘에게 은근히 겁을 주기 시작했다. 오늘 바이크 여행은 샤모니에서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스키장> Espace Killy가 있는 스키장 발디제르(Val d’Isere)까지의 코스인데, 바로 내일 이곳에서 이스랑 고개(col de l’Isran)를 넘어 조셉이 살던 본발(bon val sur l’Arc)을 거쳐 다시 몽스니 호수를 통해 이태리 국경을 넘어가는 코스가 무척 힘들다는 것이었다. 은근히 걱정이 됐지만 일단 오늘 코스를 잘 끝내야겠다는 결심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샤모니에서 알프스 깊은 산골 마지막 기차역 종점인 부르그 쌩 모리스(Bourg St. Maurice)에 도착한 것은 2시간 반쯤이 지난 후였다. 알프스 전통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대식가이자 미식가인 도명이 슬며시 한국음식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시원한 냉면이 생각난 것이 틀림없었다. 도명이의 강력한 요구덕분에 우리 3명은 한 끼도 미루거나 거르지 않았다. 식도락의 나라 프랑스 각 지역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우선은 먹고 기운을 차려야만 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발디제르로 도착하기 전 호수가 무척 아름다운 띠뉴(Tignes)에 들러 호숫가 카페에서 목을 축였다. Tignes라는 이 마을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나에게 프랑스 리용(Lyon)에서 온 부부는 친절하게 발음을 알려줬다. 진정한 여행은 현지인들과의 아무 조건 없는 접촉이자 가슴으로 말하는 소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오늘의 목적지 발디제르.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일 이곳부터 아주 험한 산길을 따라 알프스 산맥을 넘는 코스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조셉은 약 1시간 반 동안 알프스 고갯길 주행 연습을 제안했다.
발디제르에서 꼴드 리스랑 정상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급커브의 연속이었다. 접촉사고 위험은 둘째로 치고, 상대편 차량을 피하려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속 20-30㎞ 주행은 안전을 위한 필수 사항이었다. 국립공원 내 산길이기 때문에 추락사고 방지를 위한 난간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낭떠러지 길에서 처음 라이딩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영상 7도의 쌀쌀한 저녁, 숙소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바이크 라이딩 여행은 기본적인 라이딩 테크닉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알프스 산길을 경험하지 않고는 테크닉이 완전하다고 자신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종필 PAA회장은]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사 입사로 항공업에 입문한 박종필 회장은 지난 1990년 퍼시픽에어에이젠시(Pacific Air Agency, PAA)를 설립, PAA 그룹사로 성장시켰다. 전 세계 20개 이상의 항공 여객 GSA를 맡고 있는 PAA의 수장이자, 항공컨설턴트, 여행칼럼니스트 등 여행업 각양각색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