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알프스산맥을 떠올리면 스위스를 연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 알프스 산맥은 유럽의 중부에 있는 산맥으로, 동쪽의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독일을 거쳐 서쪽의 프랑스에까지 이른다. 서쪽 끝에서도 프랑스 알프스는 끝나지 않는다. 프랑스 알프스는 북부에 오트잘프(les Hautes-Alpes)를 거쳐 알프드오트프로방스(les Alpes-de-Haute-Provence), 알프마리팀(les Alpes-Maritimes), 즉 프랑스 동남부 지중해에서 끝난다. 알프스가 끝나는 곳이 바로 유명한 Monaco(모나코) 바로 옆에 위치한 Nice(니스)다.
넷째 날 우리의 바이크여행은 조지에(Jausier)에서 이태리와 국경도시인 망통(Menton)과 모나코 왕국을 거쳐 니스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조지에 샤또 호텔을 떠난 것은 아침 7시. 이번 프랑스 알프스 종단코스 중 가장 스릴만점의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번 알프스 여행의 절정은 바로 Trans-fumance라 불리는 <계절이동 목축>을 목격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여름기간 알프스의 자연에 풀어놓아 방목을 한 양떼들을 다시 모아 들여 그 수를 세고 다시 평지로 이동시키는 대 작업을 목격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장관을 감상하기 위해 니스까지 내려가야 하는 긴 여정도 잊은 채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진기한 광경을 뒤로 하고 접어선 곳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보네뜨 고개(Col de la Bonnette, 해발 2712m)와 라스빠이용 고개(Col de Raspaillon)를 넘어 메르깡투르 국립 공원(Parc National du Mercan tour)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앞서가는 조셉은 “급커브길입니다”, “경사가 180도입니다”, “와우, 215도입니다”를 반복했다. 세상에 이렇게 굴곡이 심한 산악길이 어디 또 있을까? 정상을 향하는 길은 끝없는 회전을 요구했다. 다행인 것은 차도가 폭은 좁지만 무척 상태가 좋았다는 것이다. 해발 2712m에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천국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항상 배고픈 도명은 점심때가 다가오고 있었는데도 배고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니 바로 눈앞에 이태리 알프스 산맥들이 펼쳐졌다. 오늘 코스는 독일, 영국, 북유럽에서 내려온 모터사이클 여행자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다들 놀라는 모습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유럽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왔다고 슬쩍 거짓말을 했더니 놀라워하며 그냥 믿어버리는 순수한 영국인들. 거짓말이야 하고 실토했더니 깔깔 웃는 독일인들. 우리들 애마 GS1200 차량번호판을 보고 “이 친구, 거짓말도 아주 잘하네. 너 맘에 들어”하는 프랑스인들. 그들과의 만남 또한 예술이었다.
티네(Tinee) 강이 파놓은 깊은 협곡을 따라 지중해를 향해 난 산악길은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메르깡투르 국립공원 깊숙이 들어가 무척 힘든 산악 길을 따라 지중해 망똥(Men- ton)까지 갈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멋진 경로를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도 좋은 법이다.
협곡을 따라난 길을 달리는 데 도명이가 드디어 배고프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빠른 국도를 이용해 니스로 직행했다. 우리들의 마음은 프랑스 남 알프스가 선물한 예술적 감동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유명 휴양지 니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최근 테러가 발생한 니스는 안정된 모습이었다. 하나 있던 한국 식당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하는 수 없이 프랑스 식당에서 ‘Entrecote(소고기 구이)’를 먹었다. 조금 서운한 듯 도명은 평생 먹을 스테이크를 이번 여행에서 이미 다 먹었다고 투덜댔다. 프랑스 음식에 길들여진 조셉은 입가에 미소를 지을 뿐이고, 어느 음식이나 맛있는 나는 중간 입장에서 눈치를 보며 죽을 지경이었다.
테러사건을 겪은 니스해변의 프로므나드 데장글레(영국군 퍼레이드: 2차 대전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에 영국군이 상륙을 성공하고 퍼레이드를 펼쳐서 붙인 이름)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테러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니스해변은 늘 평화로운 곳이어야 한다며 테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니스 시민들의 의지가 만들어 낸 풍경이었다.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테러 희생자 추모 꽃다발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가 다음날 떠난 곳은 프랑스인들의 여름바캉스 행선지중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인 쌩 트로뻬(St.Tropez)였다.
지중해의 해변 길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특히 니스에서 툴롱(Toulon)까지 가는 지방도는 숨 막히는 광경을 선사했다. 지중해의 명물인 상단이 둥근 모양의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차량통행도 없는 끝없는 직선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그날 아침까지도 생생하던 알프스 길을 기억조차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프랑스 지중해 중에서 니스 해변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바로 St. Raphael부터 시작되는 붉은 색의 암벽이 지중해 바다로 떨어지는 곳으로, 굴곡이 많은 이 해변 길은 바이크 여행의 색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번 바이크 여행 중 처음 맞는 비가 잠시 몰려왔다. Port Grimaud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숙소를 예약해놓았다는 조셉이 이끌고 간 곳은, 맙소사,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길과 숲길. 이런 비에 젖은 자갈투성이 산길을 오르게 될 줄이야. 잔뜩 긴장을 하고 육중한 GS를 몰며 산길을 오르니, 정상 바로 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산골 외딴 오두막집. 먹을 밥을 싸가지고 가야만 하는 곳. 바캉스철 호텔이 부족한 것을 노린 산장주인의 정직하지 못한 호텔 안내에 조셉이 속았던 것이다.
호텔 예약 업체를 통해 사진만 보고 예약했던 조셉은 예약금을 뜯기더라도 당장 내려가자고 했다. 이곳에서 자느니 차라리 해변가에서의 1박이 100배는 나을 것 같았다. 다시 미끄러운 비포장 산길을 내려가는 일이 걱정이었지만, 내려오고 나니 오늘밤 묵을 호텔이 걱정됐다. 궁여지책으로 조셉이 찾아낸 호텔은 터무니없이 비싼 바닷가 별장식 호텔. 뒤늦게 호텔을 찾는 사람들에게 비싼 요금을 요구하는 비도덕적인 행태가 뻔히 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길을 내려와 일단 배부터 채우자 생각하고 무조건 들어간 식당은 지중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미쉐린 별 2개 식당.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한번 먹어 보자라는 생각에 우리 팀의 단장 겸 회계를 맡은 내가 내 맘대로 내린 결정이었다. 정갈하고 수준 있는 셰프의 요리들, 고급서비스, 분위기까지.
전식, 본식, 치즈 그리고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먹고 나서야 새로 예약한 호텔을 찾아 다시 밤길을 달렸다.
GPS는 우리들의 밤길을 계속 헤매게 만들었다. 비포장 산길을 오르고 내리게 만들더니만 이젠 야밤에 절벽 막다른 골목길을 자꾸만 오르고 내리게 만들었다. 1시간을 방황하다가 결국 길을 찾아 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반. 여행은 계획이 수정되는 변수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제일 힘든 하루였다.
비도 맞고, 비포장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오두막 호텔에 실망도 하고, 길을 찾아 밤길도 헤매기도 했지만 일정에 없던 프랑스 고급 식당서 최고급 요리도 맛보는 잊을 수 없는 지중해의 하루였다.
하루 종일 천국 같은 경치를 감상하며 또 맛난 최고급 프랑스 요리도 맛보았지만, 왠지 프랑스나 한국이나 삶의 고단함에 젖은 인간의 모습은 때로는 너무도 초라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