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가 별장식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긴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속도로를 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한 토론이었다. 사실 프랑스의 국도와 지방도들은 고속도로보다 한가하고 아주 잘 관리돼 있어서, 굳이 돈을 내고 고속도로를 탈 필요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이틀간 650㎞라는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국도와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니 경치는 물론이고 맘대로 쉬어갈 수도 있고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세이유에 들러 유명한 해산물요리 부야베스(Bouilllabaisse)를 먹고 싶었지만, 갈 길도 멀고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많이 살아 삭막한 마르세이유 시내를 슬쩍 피해 카프다그드(Cap d’Agde)를 거쳐 쎄트(Sete)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5시간 후였다.
사실 이번 바이크 여행은 알프스 산맥은 물론이고 피레네 산맥 남부를 탐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피레네 산맥에 가다 보니 프랑스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바르셀로나에 들러 유명 건축가 가우디의 성당과 건축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도 갖고 일주일 바이크 여행의 피로도 좀 풀면서 휴식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리한 일정으로 피로가 겹치면 사고가 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도와 지방도로를 달리면서 너무도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정감 있는 배려였다. 모터사이클이 안전하게 쉽게 추월할 수 있도록 도로 오른쪽으로 차량을 비켜 달리며 추월하라는 신호(오른쪽 깜빡이를 켬)를 보내주는 차량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은 보기 드문 것인 탓에, 차량을 추월할 때마다 프랑스 모터사이클 운전자들이 하듯이 오른쪽 발을 길게 뻗어 수없이 감사를 표시했다.
국도와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을 지나야 했다. 차량이 밀리는 도시에 접어들어 정체가 시작될 때도 약자일 수밖에 없는 모터사이클을 보호해 주려는 정감 어린 교통문화는 일상화돼 있었다.
또 한 가지 감명을 받은 것은 신호등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넓고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프랑스 국도, 지방도로, 마을 시내를 달리다 보면 삼거리, 사거리, 오거리 등 사방에서 합쳐지는 로터리(불어로 Rond-point)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로터리에는 신호등이 전혀 없었는데, 원형 로터리에서의 교통규칙이 일상화 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논리였다. 핸들을 꺾어 회전하고 있는 차량이 아무래도 약자이기 때문에, 돌고 있는 차량에게 우선권을 줘야 한다.
그래서 로터리에 들어가는 차량은 돌고 있는 차량을 우선 보내고 로터리에 진입을 해야 했다. 또한 신호등이 없는 경우 주행방향 오른쪽에 난 길에서 나오는 차량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어, 이 차량에게 당연히 양보를 해야만 했다.
이런 아주 간단한 법규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지고 있기에 설령 접촉사고가 나더라도 누가 과실인지가 100% 확실하고, 교통경찰이 올 필요도 없이 사고처리를 두 당사자가 할 수 있게 된다. 쓸데없이 깜빡거리는 신호등 설치에 따른 제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 효율적인 교통의 흐름을 허락해준다. 덕분에 이 날 350㎞의 바이크 여행에서 반복된 정지-출발 횟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고, 클러치 사용을 위한 두 손의 피로도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철학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명제가 있다. 남을 알아야 내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의 삶의 방식을 알아야, 그것이 좋건 나쁘건, 나의 삶의 방식도 과감하게 개혁할 수 있다. 여행은 바로 내가 아닌 타인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타인의 삶이 결국은 나의 삶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이틀 휴식은 우리에게 무척 필요한 것이었다. 약 10일 간 1700㎞를 달린 피로가 은근히 모두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일 건강한 도명도 소화불량에다 눈이 충혈 돼 비실거리기 시작했고, 조셉은 감기약을 먹고 먹어도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도 여기저기 근육이 뭉치기 시작해 마시지를 받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3000㎞로 예정된 이번 바이크 여행의 2/3를 마쳤지만, 나머지 1000여㎞를 남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건강 상태였다. 우선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르셀로나 한국식당을 찾아냈다. 불고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만두에다가 라면까지 먹고 나니 도명의 충혈됐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조셉은 매운 김치찌개로 코를 완전히 청소했다. 나를 괴롭히던 근육통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정말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북동쪽 피레네 산맥으로 들어서자 알프스 산맥과 전혀 달리 이미 초가을 풍경이었다. 초원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스페인 모터사이클 동호회원들과 자주 지나치며 안도라(Andorra,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 위치한 자치국)에 도착하니 어느덧 낮 12시. 스페인 식으로 조리한 고기와 해산물을 먹고 피레네 산맥 남부(오리엔트 피레네)를 거쳐 다시 프랑스 지중해 도시인 나르본으로 향했다.
지중해 지역에 부는 미스트랄(Mistral)이라는 차가운 바람이 피레네 산맥까지 밀려왔다. 거센 바람을 가르며, 삭막하지만 정감이 있는 풍경의 피레네 산맥 고갯길을 넘고 넘어 다시 지중해 나르본에 도착하니 저녁 5시가 됐다. 가을 피레네 산을 내려왔는데, 지중해는 여름이었다. 땀범벅으로 마지막까지 건강을 최대한 신경 쓰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다시 프랑스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생선과 고기를 시켜놓고 지금까지 조금 자제했던 포도주도 한 병 시켰다. 프랑스 음식들은 각 음식과 어울리는 음료와 함께 먹어야 제 맛(mariage)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제는 프랑스 음식을 사랑할 때가 된 기분이 들어 구색을 갖춰 보았다.
프랑스 식사에 특징이 있다면 다. L’odorat(후각), La vue(시각), Le gout(미각), Le toucher(촉각), L’ouie(청각), Craquant(바삭거림)이 총 동원되는 이곳의 식도락 문화가 조금씩 이해가 됐다. ‘잘 먹고 많이 마시기’라는 프랑스 골족(Les Gaulois) 전통으로부터 출발, 중세시대의 향연 문화를 거쳐, 루이14세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른 향연문화의 전통은 지금도 프랑스인들의 삶의 방식에 깊숙이 스며있었다.
식당을 채운 프랑스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다가 이 미식(la gastronomie)전통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삶의 한 방식을 떠나 예술의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더군다나 프랑스 식도락 문화가 2010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로 등재될 만큼 높은 수준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 시켜준 것은 식탁 테이블 글귀인 Manger, boire et aimer(잘 먹고, 잘 마시고, 사랑하라)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세 단어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Chanter(노래하기)란 생각이 들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멋지게 사랑하고, 인생을 노래한다면 이것만큼 즐거운 삶이 있을까?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났다면 오감(다섯 가지 감각)을 발휘해, ‘보고, 듣고, 맛보고, 맡아보고, 만져보면서’ <타인과의 교감>을 해야만 관광이 아닌 진정한 여행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