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호
ZARI 대표
jiho@zaricorp.com
ZARI 창업자 및 서비스 대표
건국대학교 기술경영학 전공
여행업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한다. 변화의 요인은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여행산업은 동시에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여행사의 구조, 뒤편에서 오가는 것들, 그리고 업계 내 사람들의 구조는 바뀌지 않아왔다.
지금까지 각 산업에는 경계라는 것이 존재해왔다. 각 산업은 다른 산업의 경계를 넘지 않았고, 넘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행업계에서는 항공은 숙박을 넘보지 않아 왔으며, 숙박은 투어&액티비티를 넘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대한민국 여행산업을 이끄는 주요 기업들은 이 경계를 아직 철저히 지키고 있다. 나름의 방식으로 ‘찻잔 속의 소용돌이’는 몰아치는 것 같지만, 실상 찻잔 밖에서 몰아치는 쓰나미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니 개의치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산업의 경계라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비단 여행업을 떠나, 전 산업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정보기술(IT)이 대부분 경계를 지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행산업의 시작을 뒤돌아보면,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유통망을 구축하고 공급해오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타 국가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힘든 시절, 해당 국가에 대한 정보를 여행사는 랜드사를 통해, 가이드를 통해 정보망을 구축하고 이것을 소싱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정보기술이 등장하면서, 또 서서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어들면서 모두가 비슷한 정보를 가질 수 있거나, 또는 더 나은 정보를 구하기 쉬워졌다. 그리고 산업 내의 ‘독자적인 플레이어’라는 개념은 점점 흐려졌고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비슷한 정보를 가지게 됐다.
기존 유통산업이 그래왔던 것처럼 수많은 단계의 유통망은 점점 간소화되거나, 유통망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IT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 안의 여행기술을 연구하던 회사는 분사해 세계적인 OTA인 Expedia로 등장했고, 검색엔진 회사인 구글은 항공검색 기술회사를 인수, Google Flight를 오픈했고, 네이버는 항공권과 호텔을 판매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검색엔진에 쌓인 데이터를 모아 ‘Go’라는 여행정보 앱을 만들었고, 카카오는 실시간 여행정보 어플리케이션인 ‘트래블라인’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자유 여행 전문 여행사로 알려진 인터파크 투어도 사실은 공연예매사이트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중국의 IT기업인 Baidu는 중국의 최대 OTA인 Ctrip의 최대주주이며, Ctrip은 2대 OTA인 Quinar을 지난 2015년에 인수·합병했고, 최근 세계 최대 항공 메타 검색사이트로 알려진 SkyScanner를 인수했다.
세계 최대 공유숙박플랫폼으로 알려진 Airbnb도 기존의 숙박공유를 넘어 ‘World of Trip’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투어&액티비티 판매를 시작했다. 동시에, 막강한 기술 기반을 활용해 여행 플랫폼으로 도약하며 공격적으로 세를 넓혀가고 있다. Airbnb의 다음 목표나 방향은 ‘항공분야’이라는 후문도 있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항공업계에서도 이제는 폐쇄적인 기술환경에서 개방적인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Lufthansa를 시작으로 더 이상 GDS만을 고수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기술기반(API)을 개방하고 다양한 기술기반의 회사들에 기존 산업구조 파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여행업계가 생각했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 시점을 되돌아보면 IT기업들의 성장이 아닐까 추측한다. 모든 사업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기반으로 기술의 활용을 통해 시작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은 IT로 인해 허물어졌고, 기술에 대한 기회는 대부분 기업의 구성원들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의사 결정권자들의 선택과 투자에 따라 누군가는 성장하고 누군가는 도태된다.
지금까지 대부분 산업의 변화가 그래 왔던 것처럼, 단순히 사람이 하는 비즈니스로 알려진 여행산업은 이제 이런 관념을 벗어나 기술이라는 경계를 넘어갈 때가 됐다. 사실 이미 넘어가야만 했다.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 할 수 있지만, 절대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
내부의 혁신이라는 것은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고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더욱 더 큰 기업일수록.
하지만 내부의 자원이 항상 정답을 끌어낼 수는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만 한다. 내부에서 도출하는 답만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닐 수 있기에, 외부의 자원에 우리 것을 개방하고 협업을 고민해야 한다. 더는 우리의 고객과 시장은 옛날의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