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년 전쯤 있었던 일이다.
아침 일찍 로마근교인 피우지의 호텔을 떠나 바티칸의 성벽에 줄을 섰다.
1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드디어 입장. 솔방울 정원에서 어느 손님이 갑자기 손을 들고 질문을 하신다.
“여기는 교황청인데 바티칸은 오후에 어떻게 가냐고...?”
아마 서로 다른 곳으로 알고 계셨나 보다.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럴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피렌체를 거쳐 베네치아로 가는 길에 발생하고 말았다. 50대 중반의 아까 그 남자손님께서 나의 안내멘트를 끊으시며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따지듯 물으신다. “이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베네치아로 가요? 베니스로 가요?”
“일정표에는 플로렌스라고 되어있는데 가이드는 계속 피렌체라고 하고... 도대체 뭐가 맞는 겁니까?” 라는 질문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파리에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우스갯소리로 “비엔나는 다녀왔는데 빈은 안 가봤다” 라고 하면서 지명에 대하여 현지식 발음과 영어식 발음에 대하여 분명히 설명을 했는데 딴 소리를 하신다. 이건 그 흔한 농담 중에서도 너무도 진부한 우스갯소리인데 내 손님이 그럴 줄은 몰랐다.
자신의 변명대로 고등학교 이과를 나와서 세계사를 안 배웠고 토목공학과라 지리를 모른다고 쳐도 그간의 가이드 설명을 듣지 않고 있다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 손님을 보니 참으로 할 말이 없어진다.
여행은 여행자의 것이지 가이드의 것이 아니다. 개별여행 혹은 배낭여행은 그렇지 않겠지만, 패키지여행이나 인센티브여행으로 손님을 모시고 행사를 하다보면 정말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유럽여행을 한다면 최소한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의 여행경비를 지불하고 왔을 텐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와서 모든 것을 다 가이드가 떠 먹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건이든 서비스든 구매하해 이용한다고 할 때를 가정해보자.
150만 원이면 냉장고도 살 수 있고, TV도 살 수 있고, 최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살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다. 우리는 이런 물건들을 살 때 꼼꼼히 살펴보고 구입한다. 성능이며, 디자인, 미래의 가치까지 두루두루 꼼꼼히 따져보고 몇 날 며칠을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물건을 구입하고 나서도 설명서를 읽어보고 사용법을 잘 익히고 하는 등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에는 너무도 쉽사리 결정하고 대충대충 준비를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물론 패키지여행은 가이드가 함께 하기에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여행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을 하는 곳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와 본인이 여행하는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온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가방에 들어있는 소주나 라면의 무게만큼 여행지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이 들어있기를 바라진 않지만 여행자 본인의 여행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휴가 때 할 거 없는데 여행이나 가지 뭐” 하는 생활의 땜빵 같은 생각으로 시간을 죽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면 좀 더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여행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여행상품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일정, 호텔, 식사 그리고 선택관광에 대한 것들 까지도 잘 살펴보고 여행을 한다면 최소한 여행지에서 “속았다”라는 생각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여행사가 무료 여행봉사를 하는 복지단체가 아닌 이상 여행사는 상품가에 준하는 서비스만을 제공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여행은 어떤 것이고, 나의 여행은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 여행을 떠나기 전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여행이란 만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라는 중국속담처럼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 백년 또는 천 몇 백년 전의 모습과 그 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여행을 마치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여행지에 대한 추억들... 어쩌면 이 여행이라는 것이 만권의 책보다도 더 큰 삶의 한 페이지가 아닐까.
여행을 떠나기 전, 만권의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한번 생각 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