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의 일상10월의 마지막 주다. 가로수의 단풍이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고, 아침엔 제법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한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더 편한 계절이다.
출근길에 종종걸음 치며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엄마의 배웅을 뒤로 한 채 잰걸음으로 앞에 가는 친구에게로 향하고, 자전거를 탄 중학생은 한 손엔 핸들을 다른 한 손에 삼색 슬리퍼를 들고 쏜살같이 학교로 달린다. 마치 한 달 전의 보았던 데자뷔(기시감)를 보는 것 같다.
버스에 타 창가의 빈자리에 앉는다. 푸른 하늘에서 쏟아내는 따가운 햇볕이 나의 얼굴과 눈에 부딪힌다.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나의 몸을 계속 부딪쳐도,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이겠거니 하니 다 이해가 된다. 길가의 사람들과 가로수들은 버스를 뒤로 하고 빠르게 나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단풍이 물든 공원에서는 노인들이 어제와 같이 맨손체조를 하고, 회사를 가려는 많은 사람들은 건널목에 서서 눈이 빠지게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맞는다. 회사를 위해 늘 고민하는 식구들이며 언제나 함께하는 고마운 동료들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컴퓨터를 켜면 회사의 일상이 시작된다. 직원들은 벌써 바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오늘도 할머니들이 음식점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한 장을 받는다. 마음 같아서는 다 받아드리고 싶은데...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골목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도 우리처럼 무엇을 먹을까 하고 서로 고민하며 나왔으리라.
점심 후에 커피를 마시러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점심 먹는 것보다 커피 마실 장소를 찾는 게 더 어렵다. 내일은 점심을 더 일찍 먹으리라... 어렵게 잡은 카페에 앉아 정치, 경제, 여행, 프로야구, 집에서 있었던 소소한 얘기를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때로는 걱정도 같이해 주는 ‘우리는 One Team’이라는 유대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저녁 퇴근길에 오늘도 어김없이 ‘빅이슈’라는 잡지를 대형서점 앞에서 힘겹게 팔고 있는 노숙인을 본다. 다음에는 꼭 사주리라 생각하고 발길을 돌린다. 퇴근 시간의 전철은 사람들로 붐빈다. 주름이 깊게 패인 어르신들, 낮술을 하고 이르게 집으로 향하는 중년 아저씨들과 저녁 약속을 위해 가는 젊은이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산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지친 하루의 여행을 끝내고 각자의 안식처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아파트의 길은 더 정겹다. 개와 산책을 하러 가는 어르신들과 학원 가방을 들고 바쁘게 가고 있는 아이들과 어둑해진 거리의 가로수 불빛 밑으로 굴러다니는 낙엽은 평안함으로 나를 이끈다.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과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어댄다. 맛있는 찌개냄새에 갑자기 평안함과 피곤함이 몰려온다.
세상이 온통 적막하고 깊은 밤, 오늘 하루도 너무 감사하다. 우리나라와 국제정세는 복잡하고 나를 짜증나게 하지만, 돌아와 쉴 수 있는 집과 나를 이해해 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또한 내일도 일할 수 있는 곳과 오늘 하루도 아무런 일도 없었던 평범한 일상이 감사하고, 이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리고 달콤한 잠을 청한다. 내일은 어떤 일상이 나를 기다릴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