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노란 은행잎이 파란 하늘 사이로 눈부시게 햇빛에 반짝거린다. 온통 노랑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답게 보인다. 어떤 인상파 화가도 이런 빛의 향연을 붓으로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중력의 법칙을 이기지 못한 은행잎들이 어지럽게 길거리에 떨어진다. 그리고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여기저기서 밟힌다. 봄날에 연하고 가녀린 푸른 잎으로 계절의 시작을 알려줬던, 여름에는 맹렬한 태양의 열기를 가리며 도도하게 위용을 뽐냈던 것이 이제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삶을 다한 것이다. 모든 자연법칙이 이렇게 시작과 끝이 있듯이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거리에는 벌써 호떡 장사가 나왔다. 지나가는 길에서 풍기는 냄새가 나의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삶에 찌든 아저씨의 얼굴은 슬퍼 보이기보단 인생을 체념한 것 같은 무심한 얼굴이 나를 더 깊은 연민으로 이끈다. 삶에 있어 행복은 절대로 부와 가난의 가치로만 평가되고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말이다.
길거리를 걷는 작은 연인들이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떨어진 은행잎을 밟으며 깔깔거리며 지나간다. 아마 그들에겐 미래를 향한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겠지만 오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사람에게는 더 서글픔과 아픔만을 쌓는 기억의 장소가 될 수도 있기에. 그렇다. 사람은 어느 길을 걷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같이 걷느냐가 인생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이다.
아파트 길가에서 경비 아저씨가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힘겹게 빗자루로 쓸고 있다. 그냥 놔두고 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떤 철없는 이들이 넣은 민원 때문에 그렇게 매일 하고 계신가보다. 모두가 다 팍팍한 삶을 사는데 더불어 살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사는 삶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그 옆을 지나는데 앙상한 감나무 위에 감들이 몇 개 위태롭게 달려 있다. 아무도 따지 않는 아파트에서 도시민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생각나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날아가다가 지친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에 그래도 위안이 된다.
그렇다. 삶은 모두가 같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가진 자의 작은 배려가 없는 자에게 도움과 큰 기쁨을 준다면 이 또한 행복하지 않은가!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가을은 모든 자연과 사람들에게 상실과 소멸의 시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사람은 민감한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햇빛 양과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쓸쓸함, 고독,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 년 내내 수고한 농부들에겐 풍성함과 기쁨을 준다. 또한 최선을 다한 수험생들과 취직 준비생들에게도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사람은 똑같은 시간과 환경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자기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의해 세상을 달리 보게 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생장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 모든 것이 제로섬(Zero-Sum)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이 가을, 우리 모두가 지금 옆에 사람을 더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자. 인생은 절대로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섭리와 내가 바꿀 수 있는 필연의 조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