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업계에 이런 일이 있었다. 16개 대형패키지 여행사 대표들이 모여 여행업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일소시키고 정부의 무분별한 해외여행 자제촉구에 부응키 위해 일간지에 게재되는 해외여행상품 광고크기를 8단 이하로 자제하자고 결의했다. 결의 이후 대부분의 여행사들은 8단 이하 광고를 게재했는데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유니팩항공만이 자율결의를 어기고 전면광고를 게재해 곤혹을 치르는 일도 있었다.
당시 IMF를 갓 벗어난 여행시장은 제2의 패키지 전성기였다. 여행사가 신문사를 먹여 살린다 할 정도로 주요 일간지 신문에는 여행사 상품광고 일색이었다. 광고비 대비 수익성이 좋아 앞 다퉈 신문광고를 통한 모객에 열을 올렸다.
시장 질서를 어길 경우 부도덕한 행위로 지탄을 받는 분위기였기에 업계의 자율결의는 비교적 잘 지켜졌다. 또 패키지 여행사들은 수백에서 수천만원하는 신문사 광고비용 만큼은 자사가 직접 부담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8단 이하 자율결의는 2006년 여름시즌을 앞두고 롯데관광과 자유투어가 전면광고를 다시 게재하기 시작하면서 업계 내분이 일어났다. 전면광고를 계속 시행하는 업체들과 자율결의를 고수하는 업체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심지어 여행업협회 회원제명·자진탈퇴 등의 감정싸움으로 까지 번지기도 했다.
현재 여행시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홈쇼핑이 신문광고를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홈쇼핑채널에는 여행사 상품판매 광고가 진을 치고 있다. 예전 일간지 신문의 여행사광고와 똑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행사가 신문사를 먹여 살리더니 이제는 홈쇼핑사를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홈쇼핑 방송의 1회분 비용은 천만원대 후반에서 최고 1억 원을 호가한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홈쇼핑 방송의 증가에 따른 출혈경쟁 탓에 자금력이 열약한 신생 패키지 여행사들의 줄도산도 이어졌다.
홈쇼핑 상품광고는 결국 여행업계의 공공의 적이 되고 있지만 상품판매의 다른 채널을 찾지 못하면서 너도나도 홈쇼핑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홈쇼핑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판매방식이지만 과거 신문광고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과거에는 신문 광고비를 협력업체들에게 전가하지 않았지만 홈쇼핑 방송비용은 그렇지 않다. 양심있는 여행사들은 그나마 반반 부담을 하지만 일부 여행사들의 경우 전액을 협력사에게 전가하고 있기도 하다. 일부 협력사들은 홈쇼핑에 치를 떨고 있지만 거래가 끊어질까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용부담을 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제라도 홈쇼핑 모객을 막을 수 없다면 과거 신문광고 단수에 대해 업계 스스로 자율결의를 했듯, 업계 대표들이 모여 횟수를 제한하던지, 서로 협업을 통해 방송비용을 낮추던지 뭔가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모객도 어려운데, 홈쇼핑사만 배불리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20년 전 신문 광고단수 자율결의를 거울삼아, 홈쇼핑 여행시장을 이끌어가는 결정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