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구라 히로시라는 리더십 전문가가 쓴 책 중에 ‘서른과 마흔사이’ 라는 책이 있다. 나는 마흔이 넘었을 때 이 책을 접하게 됐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이 책의 내용과 많은 것이 겹쳤기 때문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흔 넘을 때까지 내 인생은 오로지 일뿐이었다. 컴퓨터프로그래머를 하다가 사업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됐다. 생전처음 가보는 응급실. 그때가 7월말쯤이였다. 딱 요즘 더위였다. 하지만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얼마나 추웠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응급실이 추운 게 아니라 마음이 추웠던 것 같다.
처음 가본 응급실 상황은 정말 가관이었다. 나 또한 통증이 너무나 심했지만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아파보였다. 갑자기 내 앞에서 고통을 호소하던 환자가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하얀 이불을 덥고 영안실로 가는 것이다. 내 안의 통증이 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내 생애 최고의 한파를 느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내가 살아온 인생이 필름처럼 쭉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 내가 여기서 죽으면 난 너무 억울하다. 평생 일만 하다가 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먹고 만약 여기서 살아나가면 이제 이런 인생은 끝이라고 다짐했다. 다행히 나는 퇴원을 했고 10일 만에 회복했다.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것이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읽고 싶었던 책 두어 권을 구입해 뉴질랜드로 출발했다. 10시간 비행이 금방 지나고 아름다운 뉴질랜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꽉 막혔던 가슴이 너무나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두 명씩, 세 명씩 왔는데 나만 혼자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호텔에 들어가 혼자 있는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입에서 절로 미소가 나온다.
해 질 무렵에 뉴질랜드의 그랜드캐년을 봤다. 저 멀리 보이는 광경은 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광경에 문뜩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곧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버스 앞 유리창에 큰 새가 꽝하고 부딪힌 것이다. 그것도 내 앞에 있는 유리에다가! 오마이갓! 새가 얼마나 큰지 유리창이 다 깨지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매라고 한다. 가끔 부딪힌다고 한다. 한국에서 생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여기서 다 보고 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 편히 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한 채로.
10일 동안 뉴질랜드의 곳곳을 차로 이동하면서 뉴질랜드를 거의 다 본 것 같다. 정말 완벽한 여행이었다. 나는 패키지여행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내 패키지여행의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나에게 책 읽을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여행가서 무슨 책이야? 하는 분도 있겠지만 책은 나에게 사랑을 주고, 감동을 주고, 아주 좋은 분을 공짜로 만나는 시간이기에 책 없이는 너무도 허전하다.
자유여행을 가면 책을 볼 시간이 많을 거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자유여행을 하면 관광지를 찾느라 교통을 알아봐야 하고 숙소 찾느라 헤매다보면 쉽게 지치게 된다. 숙소에 들어가면 만사가 귀찮아 잠들게 되고 그 다음날도 아침부터 오늘일정을 체크해서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고 어디까지가고 기차를 타고 등등 하다보면 벌써부터 피곤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20대 젊은 시절이라면 배낭여행 또한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대 젊은 청년이라도 패키지를 권하고 싶다. 좋은 곳을 여행하면서 좋은 책 두어 권을 읽고 오라고. 여행가서 읽는 책은 느낌이 다르다. 위에서 뉴질랜드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나는 뉴질랜드에서 본 책이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기억이 난다. 정말 좋은 책이었기 때문에 그때 그 내용까지도 기억을 한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패키지여행은 태워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머리를 다른 곳에 안 써도 되기 때문에 책을 볼 여유를 선사한다. 여행을 두 배, 세 배 더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두 시간을 기다려서 올라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낸 반면, 나는 그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책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더라. ‘남들이 왜 이리 짜증을 내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에펠탑에 올라가 멋진 사진을 찍었다.
인생은 한 번이다. 여행가서 짜증내지 말고 오늘을 어떻게 즐길까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게 고마울 때가 올 것이다. 오늘도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여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