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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3호 2024년 11월 18 일
  • 화재 · 물난리 · ‘NO일본’ · 홍콩 시위 ··· ‘관광악재’ 이어져



  • 이주원 기자 |
    입력 : 2019-12-27 | 업데이트됨 : 7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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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이슈

오키나와 슈리성 전소… 물에 잠긴 베니스

 

화재 2019년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화재로 인한 피해가 잦았다. 지난 4월 우리나라는 강원도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강풍으로 인해 확산이 빨라 초기진압에 실패했고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며 신속한 판단으로 추가 피해를 막았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화재로 인한 문화재 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10월31일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위치한 슈리성이 화마에 휩싸였다. 슈리성은 1933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으며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일본의 주요 문화재다.

 

 

같은 달 28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서부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LA의 대표 부촌 벨에어, 웨스트우드 등을 위협했고 11월26일에는 샌타바버라에서 산불이 발화해 6000여 명의 주민이 대피했다.

 

 

태풍 지난 24일 기준 2019년 한 해 동안 관측된 태풍은 1월1일 오후 3시 발생한 태풍 ‘파북’부터 12월22일 오전9시에 발생한 태풍 ‘판폰’까지 총 29개로 확인 됐다. 우리나라는 제13호 태풍 링링과 제18호 태풍 미탁 등에 피해를 입었다. 미탁은 역대 최대 강우량 태풍이었던 루사보다 많은 비를 쏟아부었으며 각 태풍의 등급은 4등급과 2등급이었다. 한 해 동안 가장 높은 5등급의 태풍은 3차례 발생했으며 제2호 태풍 우딥, 제19호 태풍 하기비스, 제23호 태풍 할롱이었다. 이중 태풍 하기비스는 일본 시즈오카 현에 상륙하며 피해를 입혔다.

 

 

지난 20일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발생한 폭풍 ‘엘사’로 인해 8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1명이 포함됐는데 강풍으로 인해 건물에서 떨어진 장식물에 맞아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1일에는 5등급 규모의 제4호 메이저 허리케인 도리안이 카리브해에 위치한 바하마를 강타했다. 이는 육지를 강타한 역대 최강의 허리케인이다. 도리안으로 인해 아바코와 그랜드바하마 전체 주택 45%에 해당하는 1만3000채의 집이 파손됐다.

 

 

화산 지난 9일 뉴질랜드 화이트섬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폭발 당시 현지를 방문한 관광객 47명 중 13명이 즉사했고 중화상으로 이송된 24명중 6명이 추가로 사망하며 총 1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홍수 지난 달 12일 물의도시 베니스가 물에 잠겼다. 이는 53년만의 대홍수였다. 수위가 187cm까지 올랐으며 대표 관광지인 산마르코 광장도 물에 잠겼다.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스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외교적?정치적 이슈

불매운동&시위로 홍콩&일본여행 ‘제동’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2019) 2019년 6월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정상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가진 회동으로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2019)’ 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후 협상에 큰 진전이 없었고 기대했던 한반도의 평화는 실마리를 잃으며 다시 불안정한 국면이 계속됐다.

 

 

일본 불매운동 지난 7월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이를 부당하게 느낀 한국 국민들이 일본 제품 사용과 여행에 보이콧하며 자발적으로 일본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줄어든 일본 노선 수요에 발맞춰 다른 나라로 노선을 변경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홍콩 시위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이 방아쇠가 되어 발생한 홍콩 시위가 장기화 되며 12월까지 이어졌다. 지난 3월 시작된 첫 시위는 점점 규모가 성장하며 이후 6월에는 10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홍콩 경찰들은 이를 ‘폭동’으로 간주해 과잉진압을 했고 실탄사용까지 이어지며 사태가 심각해졌다. 시위가 길어지며 홍콩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져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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