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나루에서 기생충 촬영지까지
온몸으로 즐기는 뚜벅이 여행
선선한 날씨에 걷기 좋은 요즘, 멀리 가지 않아도 서울 도심에서 한적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주택가 골목길이 제격이다.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이재성)은 마포구를 가로지르는 ‘경의선숲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아현동 고갯길’, ‘마포나루길’, ‘성미산 동네길’ 그리고 ‘하늘 노을길’ 까지 마포구 도보 관광코스 중 5선을 선정했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지역을 그룹화해 전철역 중심으로 만들어, 대표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마포구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으니 골목 산책만으로도 여행의 느낌을 낼 수 있다. 다만, 거리에 코스 관련 이정표가 없어 걷기 전에 지도 앱에 경유지를 표시해 둬야 길 찾기가 수월하다.
<사진 제공=서울관광재단>
■도심 속 힐링 산책 ‘경의선숲길’
경의선숲길_홍대입구역과 와우교 사이 경의선숲길 구간에 경의선책거리를 조성하고, 관련 조형물을 설치했다.
경의선 폐철로 구간을 공원화한 경의선숲길은 용산구 용산문화센터에서 마포구 가좌역에 이르는 총 6.3㎞의 도심 산책길이다. 이 산책로가 효창공원역, 공덕역, 서강대역, 홍대입구역, 가좌역 등 5개 전철역을 지난다. 마포구 중심을 종단하며 관광 명소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알짜배기 코스다. 경의선숲길은 전철역을 기준으로 네 개 구간으로 나뉜다. 구간마다 특색 있어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경의선숲길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은 홍대입구역과 가좌역 사이 연남동 구간이다. 상가 밀집 구역인 데다 공항철도역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한다. 잔디밭과 실개천이 흐르는 이 구역을 ‘연트럴파크’라 부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연남동의 핫플레이스인 동진시장 골목에 닿는다. 청년들이 주말에 동진시장에서 플리마켓을 여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시장 안이 고요하다. 동진시장 주변 골목에는 SNS 속 인기 카페와 책방,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질 좋은 원두를 싸게 판매하는 카페리브레, 일본 카레집 히메지,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소이연남, 멕시코 가정식 요리를 제공하는 베무초칸타나, 정통 중국요리점 향미, 구가원 등 셀 수 없이 많다.
가좌역이 가까운 연남동 끄트머리에는 복합문화 공간 다이브인, 향수 공방 가르니르, 디저트 카페 땡스오트 연남, 서점 포르트 등의 유니크 한 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늘어선 산책로를 지나면 곧 가좌역에 도착한다. 약 5km / 약 1시간20분가량 소요
■계단 넘어 쉼을 찾아가는 ‘아현동 고갯길’
아현동 고갯길 _영화 ‘기생충’ 촬영지인 돼지쌀슈퍼의 주인이 촬영 당시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슈퍼 오른쪽 골목에 있는 계단도 ‘기생충’에 등장한다.
아현동은 조선 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오랜 동네로 대표적인 서민 거주지였다. 아현역 일대 뉴타운 개발을 통해 신축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면서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탈바꿈 중이다. 아현역과 애오개역 사이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재개발 전후의 동네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아현동의 서민적인 풍경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빛을 발했다. 영화 초반부 최우식(기우 역)이 동네 슈퍼에서 박서준(민혁 역)을 만난 장면과 중반부 박소담(기정 역)이 복숭아를 사 들고 박 사장 집으로 향하던 장면을 아현동 고갯길에서 촬영했다. 영화 속 ‘우리슈퍼’는 실제로는 ‘돼지 쌀 슈퍼’이며 박소담이 걸어 올라갔던 계단은 슈퍼 바로 옆 골목이다.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수상한 이후 국내외 관광객이 이곳을 성지처럼 방문한다.
1958년에 지어진 목욕탕 행화탕은 재개발로 철거가 확정된 이후 몇 년 동안 방치되다가, 2016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사 축제행성이 ‘예술로 목욕합니다’ 슬로건을 걸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약 3km / 약 1시간가량 소요
■먹을거리로 가득한 ‘마포나루길’
마포나루길은 조선 시대 한강을 주름잡던 마포나루와 이 일대에 살았던 당시 인물들의 자취를 더듬어 걷는 길이다. 옛 마포나루터를 찾아보고, 흥선대원군과 토정 이지함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장통 노포에서 식도락을 즐기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고고학자가 유적지를 발굴하듯 표지석만 남은 옛터에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재미가 있다.
첫 목적지인 아소당터(아소정터)는 흥선대원군의 별장터다. 흥선대원군은 말년을 보낼 별장과 자신의 묘소를 길지에 조성했다. 지금 그 자리는 동도중학교와 서울디자인고등학교의 정문 옆 작은 공터로 남았다. 아소당터 표지석이 없다면 모르고 지나칠 법하다. 용강동 큰우물로2길 고갯길에 자리한 정구중가옥은 192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추정된다. 용강동의 부농 이 모씨가 외동딸을 위해 장안 4대 목수로 소문난 안영달에게 부탁해 지은 집이다.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 동안 넣어 두었다가 1년 동안 건조한 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고갯길을 넘어 마포 사거리에 닿으면 토정 이지함(1517~1578) 동상을 만난다. 조선 중기 학자 토정은 ‘토정비결’의 저자이며, 조선 3대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생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 흙담 움막집에서 살아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고 한다.
마포와 소금은 깊은 연관이 있다. 옛날 삼개포구로 불렸던 마포나루는 조선 후기에 들어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과 젓갈이 주로 마포 주변에서 거래됐다. 마포나루터의 번성했던 상권이 마포갈비 골목을 비롯한 음식문화거리로 이어졌다. 옛날 뱃사람과 상인들이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던 것이 마포갈비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족발 골목, 전 골목으로 유명한 공덕시장은 전성기 시절 600여 개의 점포가 있었다고 한다. 20~30년 전부터는 서비스 고기였던 갈매기살을 파는 고깃집이 많아져 마포갈매기 골목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고기 천국’이라 불리는 마포 먹자골목에서 연탄불에 구워 먹는 양념 돼지갈비를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최대포집과 국물에 밥을 토렴해주는 사골 곰탕집 마포옥, 바싹 불고기의 원조 역전회관은 먹자골목의 필수 방문 코스다. 약 4km / 약 1시간10분가량 소요
■나지막한 동네산책길 ‘성미산 동네길’
성미산 동네길_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201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국내외 후원자들이 힘을 합쳐 설립했다.
성산동은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서교동, 연남동, 상암동, 망원동과 접해 있어도 거리가 한산하다. 대부분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곳을 산책 코스로 소개하는 이유는 숨은 명소가 꽤 있기 때문이다. 골목 여행의 묘미를 알고 싶다면 성산동을 걸어볼 일이다.
성산동에는 산이 성처럼 둘렀다는 뜻을 지닌 성미산이 있다. 성미산에서 성산동의 지명이 유래됐다. 성미산은 해발 66m에 불과한 산이지만 주민들이 즐겨 찾는 힐링 명소다. 성미산 바로 아래 마포중앙도서관이 있으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서울의 3대 빵집으로 불리는 리치몬드 제과점 등이 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위안부 역사와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세계 분쟁과 여성 폭력에 관한 정보를 전시하는 곳이다. 성북동 나폴레옹과자점에서 일하던 명장이 1979년 독립해 차린 리치몬드 제과점은 서울 빵지 순례 필수 코스로 소문났다. 대로변에 있어 지나가는 길에 들르기 좋다.
망원역 2번 출구로 가면 망원시장과 망리단길로 이어진다. 망리단길의 식당, 카페, 생활용품점, 책방, 악세서리 숍, 빈티지 편집숍, 문구용품점 등의 상점들이 대체로 협소하고 소박하다. 망원동의 서민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점이 외지인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망리단길에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트렌디한 카페와 식당 외에도 주민 맛집이 많다. 경기떡집은 ET를 닮아 이티떡이라 불리는 찹쌀떡으로 유명하다. 얼큰한 곱창전골이 끌리는 날에는 청어람을, 저렴하게 푸짐한 한 끼를 먹고 싶다면 맛양값에 가면 된다. 망리단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망원한강공원 내 서울함공원이 나온다. 약 3.5km / 약 1시간가량 소요
■하늘과 석양이 아름다운 ‘하늘 노을길’
가끔 도심을 벗어나고 싶다면 한강 변에 자리한 월드컵공원을 추천한다. 오후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으로 이루어진 월드컵공원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에 도전해 보자. 도심 속 공원인데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교외로 나들이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 코스는 계단을 제외한 총거리가 8km가 넘고, 대부분 그늘이 없는 시멘트길이어서 다리 피로도가 높은 편이다. 하늘공원(98m)과 노을공원(96m)도 고지대에 있어 편한 신발과 복장을 갖춰야 한다. 노을 맛집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서 야경을 보려면 늦은 오후에 걷기 시작하면 된다. 9월 기준 21:00까지 개방(20:30분 이후 진입 통제)한다.
아이와 함께 걷거나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하늘공원 아래 메타세쿼이아 숲길(희망의 숲길)과 난지천공원만 걸어도 충분하다. 이 구간은 녹음이 우거진 구간이므로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에 걷기 좋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 오를 때는 맹꽁이전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하늘공원 계단 아래에 있는 흙길 산책로이며 강변북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680m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숲길이지만 제법 운치 있어 포토존으로 소문났다. 아직은 호젓한 편이어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 하늘공원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하늘공원 서쪽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통해 하늘공원으로 갈 수 있다. 하늘공원은 예전의 쓰레기 산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억새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해 질 녘 전망데크에 서서 화려한 서울 도심을 굽어보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약 8.3km / 약 2시간 20분가량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