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재임시절 아내와 바로셀로나에서>
조금은 서툰 듯 한 유머감각으로 상대방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동네 아저씨 스타일이다. 나이보다 꽤나 젊은 패션감각은 또 옷 잘 입고 다니는 멋진 남자로 느끼게 한다. 그가 곧 40년간 달고 다니던 관광인의 꼬리표를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인이 된다. 한때는 외국인 유치에 젊은 혈기를 쏟아 부었고, 또 한때는 자그마한 도시국가에 우리 국민 100만명을 년간 송출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해 왔던 그를 시내 커피숍에서 만났다.
퇴임을 앞둔 소감은
지난 40년을 관광산업에서 일했다. 24년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인바운드, 1년은 제주컨벤션센터에서 국제회의, 15년은 홍콩관광청에서 아웃바운드를 담당했다. 1년 전 본청에 사임을 표명해서 지금은 마음은 홀가분하다.
돌이켜보면, 관광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관광이었다. 그간 여행을 통해 행복과 지혜를 담아 왔고, 우리와 다른 삶과 문화도 많이 경험했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All is well that ends well(결과가 좋으면 만사가 다 좋다)’ 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40년간 슈트를 즐겨 입어 양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평을 들었는데, 퇴임을 앞두니 약간은 아쉽다. 업계 선후배들로부터 ‘그 사람 참 괜찮았던 사람이었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재직 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1년 한 도시국가(홍콩)가 100만 명의 한국인을 유치해서 홍콩이 한국 아웃바운드시장에서 4번째로 원밀리언 클럽에 가입해 지사장의 역량이 높게 평가를 받았을 때다.
초창기와 현재의 홍콩시장 변화는
초창기인 2006년 한국인 홍콩방문객은 60만명대 였으나, 코로나19전까지만 해도 149만명까지 유치해 250% 성장하는 쾌거를 이뤘다. 홍콩인바운드시장에서 3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아울러, 항공수용능력도 연간 공급좌석이 90만석에서 240만석으로 260% 증가했다. 이러다보니, 홍콩의 상품들 역시 다양화됐다. 홍콩의 야경, 쇼핑, 홍콩∼마카오∼선전 등 패키지 중심에서 컬쳐, 아트, 트레킹, 와인, 음식, 이벤트, 축제 등 FIT와 리피터 수요가 늘어났다.
한국인 방문지역도 침사츄이, 몽콕지역 중심에서 올드 타운 센트럴, 사우스 아일랜드, 스탠리, 삼수이포 등으로 확대됐다. 여행층도 젊은 여성 직장층에서 대학생, 중견 커리어 여성, 45~55 주부층, 패밀리까지 타킷층이 확장됐다.
업계 종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해 이맘때면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힘든 날이 지속되어 떠나는 사람으로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지난 15년간 업계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업적으로 늘 흔쾌한 협조에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 한분 한분을 기억하며 고마운 마음과 함께 만든 추억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향후 계획은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생긴다고 한다. 그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숙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으로부터의 해방, 일로부터의 탈출을 찾아 퇴임을 했으니 당분간 자유를 찾아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고 싶다.
15년 전 지사장 취임 인터뷰 중에 어느 매체에서 은퇴 후의 계획을 물어 보길래, 오드리 햅번이 나의 먼 미래상으로 오지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현재는 아쉽게도 희망으로만 남아 있어, 세상에서 사랑을 나누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진 제공=권용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