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매대에 펼쳐진 신선한 과일과 채소들, 뻥이요! 소리에 놀라는 아이들, 추운 겨울 호호 불며 호떡먹는 사람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집 등이 떠오른다. 한국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고, 고향의 정취가 배어 있으며, 무엇보다 오랜 세월 이어진 손맛이 깃들어 있다.
전국 곳곳의 오일장과 상설시장에서는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별미들이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추운 계절이면 더욱 생각나는 특별한 먹거리와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미각과 추억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5개의 지역 시장을 소개한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먹거리 축제, 모란민속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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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장 기름에 튀기듯 구운 호떡 ©길지혜
모란민속오일장(이하 모란장)은 매월 끝자리가 4, 9일인 날에 열린다. 장이 서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모란역 5번 출구가 붐비는데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장터는 마치 먹거리 축제장 초입 같다. 넉넉한 시골 장터 인심은 덤이요, 저렴하고 맛있는 먹거리로 시장이 온통 별미다.
모란장은 13개의 다양한 품목을 팔기 때문에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에서도 찾아온다. 다만, 유념할 것은 배를 비우고 갈 것, 장터 지천이 먹을거리다. 찬바람 불고 한기가 옷 속을 파고드니 따듯한 음식이 당긴다. 꽈배기, 호떡, 뻥튀기, 팥죽, 칼국수, 수구레국밥까지 입맛 돋우고 속을 채워줄 먹거리 천지다. 물론 저렴한 값은 덤이다. 모란장은 반나절은 거뜬히 구경할 거리가 넘친다.
모란장은 조선 시대부터 규모 면에서 손꼽혔던 장이었던 만큼 기름 장사도 있었을 터, 골목 초입부터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하는 백년기름특화거리로 들어선다. 길을 몰라도 고소함을 따라가면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기름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가판대에 있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고소한 향을 코끝에 전달한다.
2번 진출입로에서는 아이들이 귀를 양손으로 틀어막고 곧 터질 듯 돌아가는 뻥튀기 기계를 바라본다. “뻥이요!” 군밤과 옥수수, 쌀, 서리태 등이 차례로 바구니에 담긴다. 원하는 재료는 뭐든지 튀겨준다.
특히, 시장 먹거리 가운데 선두주자로 꽈배기와 쫀득한 찹쌀도넛이 있다. 170도 기름에 노릇노릇 튀기듯 구운 호떡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별미이다. 길에서 만든 음식이 뭐가 그리 대단하고 맛있을까 싶지만, 오일장에서 먹는 음식은 엄마의 손맛 같은 정이 담겨있다.
품바 공연장 바로 옆에는 호박죽, 칼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한다. 술값만 받고 안주를 무한리필 해주는 포장마차도 있다. 무엇보다 모란장 최고의 먹거리는 손칼국수이다. 조리과정을 보는 재미와 더불어 청양고추와 양념장을 취향껏 넣어 먹으면 걸쭉한 멸칫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혀에 착착 감긴다.
도심에서 열리는 민속장은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장이자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는 곳이며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장터이다.
영동지역 사람들의 삶이 담긴 음식, 북평민속시장 소머리국밥
찬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날씨, 동해 시내에 오일장이 섰다. 끝자리가 3, 8일에 열리는 북평민속시장(이하 북평장)이다. 지붕 덮인 아케이드 형태의 전통시장과 달리 길 따라 좌판을 깔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의 모습이 옛 모습 그대로여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북평장 문화광장 인근에는 다양한 옛 이름을 가진 국밥집이 줄을 지어 늘어선 국밥 거리가 있다. 국밥집을 들어서면 출입문 안쪽의 커다란 가마솥 뚜껑에서 뜨거운 김이 솟구치듯 오른다. 바쁘게 오가던 국밥집 주인이 순식간에 뚝배기 국밥 한 그릇을 말아낸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국밥은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이다.
과거 문화광장은 강원도에서 유명한 우시장이 열렸던 장소이다. 우시장은 2008년 삼척시 미로면에 새롭게 개장하며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국밥 거리로 남아 있다. 특히, 북평장 국밥집에서 유명한 메뉴는 소머리국밥이다. 가까이에 쇠전과 도살장이 있어 고기를 팔고 남은 소머리나 내장 같은 부위를 구하기 쉬웠으니 그것을 이용한 국밥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소머리국밥은 식당마다 비법이 담긴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하기 때문에 식당마다 다른 맛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뽀얀 국물을 내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빨간 국물을 내는 식당도 있다. 각자 취향에 따라 식당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소머리를 삶아 우려낸 곰탕 같은 뽀얀 국물 가게는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순수하게 고기 우려낸 국물에 손님의 취향대로 넣는 소금과 새우젓, 다진 양념을 조합하며 먹는 재미가 있고, 소머리를 삶아 나온 뽀얀 국물이 밋밋하다고 느낀다면, 무와 파를 넣고 다진 양념을 올린 빨간 국물 가게는 맵다기 보단 진한 국물의 육개장을 먹는 듯한 재미도 있다. 특히,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는 고소한 맛을 배로 전달한다.
꼭두새벽부터 열린 우시장은 소를 거래하기 위해 먼 거리를 온 사람들이 거래를 앞두고 막걸리 한 사발과 국밥 한 그릇으로 주린 배를 채우곤 했다. 거간꾼과 흥정을 통해 큰돈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뱃심을 채우는 방법이기도 했다. 시골에서 농사 짓는 옛 사람들에게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1980년 무렵만 해도 소 한 마리를 내다 팔면 자식의 국립대학 4년 치 등록금을 내고도 남는 돈이었으니 거래가 끝나기 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좋은 가격에 소를 팔면 거간꾼에게 “내가 한 잔 살게” 하며 국밥집에 들르기도 했다.
지금도 북평장의 국밥집은 지인과 어울려 식사하면서 가볍게 술 한잔하고 가는 장소로 인식되어 있다. 식당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몰래 밥값을 계산하고 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영동지역 사람들에게 북편장의 국밥집은 마음의 고향 같은 장소라고도 말한다.
단양팔경과 마늘 요리, 단양구경시장
단양장 크림치즈 마늘빵과 바게트 마늘빵 ©박상준
단양구경시장(이하 단양장)은 전국의 손꼽히는 팔경 가운데 유명한 단양 8경에 더한 1경이라 해 구경으로 불린다. 시장 구경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으며, 약 120개의 매장으로 이뤄진 상설 재래시장으로 단양전통시장이 전신이다.
이 곳은 ‘먹방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여행객으로 붐비는데, 단양팔경 못지않게 인기다. 단양구경시장은 2010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을 통해 새롭게 시작했다. 지역민을 위한 시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관광객들에 포커스를 맞추는 전략이었다. 특히, 다른 음식과 어울려 최고의 맛을 뽑아내는 향신료로 마늘을 사용하고 있다.
단양팔경은 대부분 석회암 지질이 빚은 풍경이다. 그 석회 지역의 약산성 토양과 산지마을의 큰 일교차가 단양마늘을 키웠다. 단양마늘은 보통 예닐곱 쪽으로 이뤄졌다. 그리하여 ‘육쪽마늘’이라고도 불리는데, 남도마늘에 비해 알은 조금 작은 편이지만, 단단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단양장은 달콤하고 알싸한 마늘 양념이 혀끝을 자극해 미감의 세계로 안내한다. 남한강 변 단양장 공영무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장 동쪽 도담문으로 접어들면 생마늘이 보이지 않더라도 마늘 시장임을 실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간판마다 마늘이 접두어처럼 붙어 있다. 마늘순대, 마늘만두, 마늘빵, 마늘갈비 등이다.
마늘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간식이 마늘빵이다. 시장 구경을 하다보면 홀린 듯 마늘버터 향을 따라가게 되는데 오븐에서 곧장 구워 매대로 직행하는 각종 마늘빵들이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크림치즈 마늘빵, 마늘 크루아상, 바질 마늘빵 등 다양한 종류의 빵을 가게별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그 밖에 흑마늘 반죽으로 빚은 통마늘 모양의 흑마늘빵이나 흑마늘소금빵 등도 새로운 맛의 경험이다.
또한, 직접 만든 마늘기름을 사용하여 찹쌀피로 만든 쫄깃한 식감의 마늘만두, 단양의 마늘떡갈비 등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한 단양장의 간식이다.
추운 겨울에는 따듯한 마늘순대국과 마늘순대가 백종원, 허영만 등 미식의 달인들을 내세워 여행객을 불러 모은다. 순대 안에 마늘이 들어가 향이 좋고 잡내가 없으며, 각자의 식성에 따라 마늘부각, 마늘아이스크림 등 숨은 맛집을 찾는 재미도 특별하다. 맛보기 수준을 넘어선 큼지막한 시식 음식 또한 넉넉한 시장의 인심을 느끼게 한다.
일부 맛집은 주말에 줄서는 것은 기본이며, 단양 여행의 첫 끼 또는 식후 간식, 숙소로 들어가기 전 ‘야식’으로 종목을 구분해 시장 구경 계획을 짜는 것도 방법이다. 일부 가게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도 하며 굶주린 배를 효과적으로 배부르게 채우며 눈과 입 모두가 즐거운 시장이다.
추워야 더 맛있다, 창녕전통시장의 칼칼한 수구레국밥
창녕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의 수구레국밥 ©유은영
창녕전통시장(이하 창녕장)은 1900년대에 보부상들이 집결하던 큰 시장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장을 모아 지금 자리에 개설한 것이 1926년이라 하니 어느덧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후 1980년에 상설시장이 들어오면서 오일장과 상설시장이 함께하는 전통시장으로 자리잡 잡았다.
오일장이 크게 서는 창녕장의 3, 8일에는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룬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특산품도 많다.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손을 호호 불며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이 간절해진다. 창녕장은 수구레국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KBS ‘1박2일’에 이수근이 수구레국밥을 먹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창녕 명물로 떠올랐다.
수구레란 소 한 마리에 2kg 정도만 나오는 특수부위이며, 소가죽과 고기 사이에 있는 아교질 부위이다. 사투리 같지만 국어사전에 등장하는 엄연한 표준어이다. 창녕 사람들은 오히려 ‘소구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뜨거운 김이 펄펄나는 커다란 가마솥이 손님을 유혹한다. 뚝배기가 상에 놓인다. 빨간 국물에 콩나물, 선지, 파, 수구레가 가득 담겨있다. 칼칼하면서 구수한 국물과 쫀득쫀득한 수구레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입안에 가득 찬다. 수구레국밥 안에는 밥이 없다. 경상도식은 밥이 따로 나오는 것이 특징인데, 국과 밥을 따로 먹다가 밥을 말아 먹는 것도 또 다른 별미이다. 국수사리를 넣어 먹기도 하고, 청양고추를 다진 양념장을 올려 더 칼칼하게 먹기도 한다.
창녕장의 또 다른 주전부리로 생활의 달인 전통시장 꽈배기 달인으로 출연한 꽈배기집이 먼저 발길을 잡는다. 통통한 꽈배기와 쫀득한 찹쌀도넛은 배가 불러도 포기할 수 없다. 갓 구워낸 국화빵과 따끈한 어묵, 쑥떡, 순대까지 유혹은 끝이 없다.
시장에서 제일 긴 줄은 역시 호떡 가게이다. 유명인들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6시내고향’에도 나온 적 있는 호떡집이다. 노릇노릇 구워진 찹쌀호떡을 종이컵에 담아 주는데, 종이컵 위로 툭 튀어나올 만큼 크다. 쫀득쫀득한 호떡과 뜨거운 꿀물을 호호 불어먹는 맛이 추위도 잊게 한다.
마음을 녹이는 달콤한 맛과 정, 말바우시장 팥죽
말바우장 정성껏 쑨 동지죽 ©장보영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전국의 전통시장 중 서민의 향수가 진하게 전해지는 광주광역시 북구 우산동에 자리한 말바우시장이 있다. 1960년대 무렵 풍향동 서방시장의 노점상들이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우산동으로 이주하며 형성된 말바우시장은 농·축산물과 해·수산물 등을 사고 팔기 위해 찾는다.
말바우시장에는 무려 5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골목 사이사이 오래된 맛집이 숨어있어 식도락 여행을 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 중 손꼽히는 메뉴가 전라도식 국밥과 더불어 팥죽이다.
팥죽 전문점답게 이들이 내세우는 메뉴는 ‘팥죽’과 ‘동지죽’이다. 팥죽에는 쫄깃한 면발의 칼국수가 들어가 있고, 동지죽에는 몰캉몰캉한 새알심이 들어 있다. 전부 맛과 정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매일 새벽 팥을 씻어 불리고, 불린 팥을 솥에 넣어 끓이고, 새알심을 빚거나 칼국수면을 반죽해 뽑는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손맛이 다르기에 팥죽 맛도 모두 다르다. 맛집 순례하듯 가게를 돌아보며 가장 좋아하는 팥죽집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끼에 5,000원이면 대접 한가득 푸짐한 팥죽을 맛볼 수 있다니 요즘 세상에 흔하지 않은 인심이다.
말바우시장은 매달 2, 4, 7, 9일로 끝나는 날에 정기적으로 시장이 서는데, 팥죽집은 장날이 아니어도 매일 문을 연다. 마치 배가 고프고 정이 그리울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푸근한 고향집과도 같다.
<이규한 기자> gtn@g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