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가을은 성수기의 인파에서 한 걸음 물러나 걷고, 느긋하게 기차를 타고, 그 지역의 계절 음식을 맛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붐비는 명소 대신 덜 알려진 산책로를, 자동차 대신 기차와 케이블카를, 짧은 인증샷 대신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무는 시간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위스정부관광청(이하 관광청)이 제안하는 '트래블 베터(Travel Better)' 여행법이다.
관광청이 2025~2027년 제안하는 '트래블 베터' 여행법은 ?성수기를 비켜 가 볼 것: 사람이 몰리는 여름·겨울 대신, 가을처럼 한산한 계절을 선택하면 같은 장소도 다르게 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눈을 돌릴 것: 인기 명소 하나에 힘을 쏟기보다, 스위스 곳곳에 흩어진 덜 알려진 코스를 찾아가 보자 ?한 곳에 조금 더 머물러 볼 것: 짧게 스쳐 가는 대신, 하루쯤 더 머물며 그 지역의 시간에 맞춰 걷고 먹어 보자 ?현지의 일상에 스며들 것: 관광객으로만 머물지 말고, 현지 주민의 생활 리듬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자 등이다.
이렇게 여행하는 것은 스위스가 2021년부터 이어온 지속가능 여행 프로그램 스위스테이너블(Swisstainable)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2700개 이상의 스위스 관광업계 파트너사가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곧 트래블 베터의 시작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스위스의 가을을 즐겨볼 방법을 소개한다.

슈피츠ⓒ스위스정부관광
1. 캄블리 쿠키 트레인
베른과 루체른을 잇는 이 노선은 기차 창밖 풍경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여정이다. 젠트랄반의 루체른-인터라켄 익스프레스를 타고 브뤼닉 고개를 넘으면, 가을이면 짙은 다갈색으로 물든 침엽수림 사이로 다섯 개의 호수가 차례로 나타난다. 베엘에스 레기오 익스프레스로 갈아타 에멘탈 지역에 들어서면, 완만하게 굽이치는 목초지 사이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엔틀레부흐가 펼쳐진다.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트룹샤헨에 자리한 캄블리 익스피리언스로, 이곳에서 스위스 국민 과자, 캄블리 제품이 구워지는 과정을 직접 살펴보고 시식할 수 있다. 가을 비성수기의 한산한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흘러가는 시골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이 여정은, 정해진 목적지 하나에 몰리기보다 이동 자체를 즐기는 여행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2. 알프스 능선 위의 두 얼굴
맨리헨 로열 워크 : 맨리헨 산악역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로열 워크는 고작 120m의 고도차를 오르는 완만한 산책로지만, 그 끝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아이거 · 묀히 ·융프라우 세 봉우리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정면으로 펼쳐지며, 가을이면 맑고 건조해진 공기 덕분에 봉우리의 능선이 유독 또렷하게 드러난다. 벵엔-맨리헨 케이블카의 개방형 발코니를 타고 오르면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산 정상에 다다르는 재미도 있다.
쉴트호른 피츠 글로리아 : 해발 2970m 쉴트호른 정상에 자리한 세계 최초의 360도 회전 레스토랑 피츠 글로리아는, 45분에 한 바퀴씩 회전하며 아이거·묀히·융프라우를 포함한 200여 개 봉우리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007 영화 ‘007 여왕 폐하 대작전’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여정 중간중간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한 전시도 만날 수 있다. 가을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 운해 위로 봉우리들만 섬처럼 떠오르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케이블카만으로 접근 가능해 체력 부담 없이 알프스 파노라마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교통을 활용해 짧은 시간에 깊은 감동을 남기는 여정에 잘 맞는다.
3. 걷고 맛보는 가을
슈피츠 포도밭 센서리 어드벤처 트레일 : 툰 호수 변 슈피츠는 가을이면 포도나무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들며, 스위스 고산 포도 재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슈피츠 포도밭 센서리 어드벤처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 포도 품종과 재배 방식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지나며 현지 와인과 포도 특산품을 맛볼 수 있다. 유리알처럼 잔잔한 툰 호수와 주변 알프스 봉우리를 배경으로 인근 베이커리에서 준비한 피크닉 바구니를 펼쳐 놓고 여유를 부리는 것도 이 트레일만의 즐거움이다.
인터라켄 퐁뒤 럭색 : 인터라켄과 지그리스빌에서는 치즈 퐁뒤를 담은 배낭을 메고 떠나는 '퐁뒤 럭색' 하이킹을 사계절 즐길 수 있다. 지그리스빌의 퐁뒤 럭색은 암스투츠 유가공장에서 사전 주문해 픽업할 수 있으며, 지그리스빌에서 출발해 현수교를 건너 이웃 마을 애슐렌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따라 걷다가 원하는 자리에서 퐁뒤를 즐기면 된다. 인터라켄의 퐁뒤 럭색은 어드벤처 호스텔 인터라켄 내 퐁뒤 빌라에서 준비하며, 이젤트발트에서 기스바흐까지 브리엔츠 호수 변을 따라 걷는 코스와 잘 어울린다. 포도밭 사이를 걷고, 산길 위에서 배낭 속 퐁뒤를 꺼내 나눠 먹는 이 두 코스는 명소를 스쳐 가는 여행이 아니라 그 지역의 시간과 산물을 함께 누리는 방식이며, 선선한 가을 공기는 장거리 하이킹에도 알맞은 계절적 이점이 된다.

지그리스빌ⓒ스위스정부관광청
4. 마테호른 아래, 황금빛 낙엽송
고르너그라트 : 체르마트 기차역 맞은편에서 출발하는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는 약 33분간 숲과 협곡, 다리를 지나며 고도를 높여간다. 가을이면 열차가 지나는 산비탈의 낙엽송 숲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만년설이 쌓인 마테호른과 극명한 색의 대비를 이룬다. 해발 3089m 정상 전망대에서는 4000m 급 봉우리 29개와 몬테로사 빙하가 한눈에 들어오며, 로텐보덴 · 리펠베르크 구간에서는 운이 좋으면 발레 지방 특산 검은 코 양이 늦가을 초원에서 풀을 뜯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여름 성수기에 비해 인파가 한결 줄어든 가을에는 정상 전망대에서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붐비지 않는 계절과 시간대를 골라 방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5개 호수 하이킹 : 체르마트 마을에서 지하 퓨니큘러를 타면 단 4.5분 만에 해발 2288m 수네가에 닿는다. '양지바른 모퉁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에서는 마테호른을 마주 보며 걷는 5개 호수 하이킹이 시작된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호수 수면에 마테호른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데, 가을이면 호숫가를 둘러싼 낙엽송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그 반영이 한층 화려해진다. 비교적 한산한 가을에는 성수기라면 놓쳤을 호수의 고요한 반영까지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수네가에서 도보로 이어지는 산간 마을 핀델른에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산장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어, 하이킹 후 따뜻한 라클렛이나 뢰슈티로 마무리하기에 좋다.
5. 도심에서 근교까지
취리히 중앙역에서 S10 열차를 타고 약 20~25분이면, '취리히의 지붕'이라 불리는 뒷동산 위틀리베르크(해발 870m)에 닿는다. 정상 전망대에서는 취리히 호수와 도심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알프스 능선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펠젠에그까지 이어지는 플라네텐베크(행성의 길')를 따라 걸으면 태양계 행성 모형을 지나며 약 6km, 2시간가량의 능선 산책을 즐길 수 있는데, 가을 늦은 오후에는 취리히 시내가 안개에 잠기고 위틀리베르크만 그 위로 솟아오르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어 '구름바다 위의 산책'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대중교통만으로 반나절 만에 산 정상의 파노라마와 단풍 산책을 모두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짧은 일정의 여행객에게도 부담 없는 선택지가 되어 준다.
6. 기차 창밖으로 완성하는 스위스의 가을
빙하특급 : 체르마트에서 마테호른을 뒤로하고 출발하는 빙하특급은 8시간에 걸쳐 91개의 터널과 291개의 다리를 지나며 스위스를 가로지른다. 오버알프 고개의 고산 지대와 저지대 활엽수림을 모두 통과하는 이 여정에서, 가을이면 디젠티스와 엥가딘 일대의 낙엽송 숲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차창 전체가 그림처럼 물든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특급열차'라는 별명답게, 목적지에 빨리 닿기보다 여정 자체를 온전히 누리도록 설계된 이 열차는 천장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 창을 통해 끊임없이 바뀌는 가을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베르니나 특급 : 생모리츠에서 이탈리아 티라노까지 이어지는 베르니나 특급은 톱니바퀴 방식 없이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는 독특한 노선으로, 그 자체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모르테라치 빙하와 팔뤼 호수 주변을 지날 때, 가을이면 빙하의 푸른빛과 낙엽송 숲의 황금빛이 나란히 펼쳐지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베르니나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 국경을 지나면 밤나무 숲이 우거진 지중해성 기후의 포스키아보 계곡이 나타나, 짧은 시간 안에 고산과 남유럽 풍경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