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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바탕’

인터뷰] 지수일 페루 서울여행사 대표

  • 게시됨 : 2026-10-29 오후 1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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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페루에서 첫 가이드 생활을 1999년부터 했으니 27년 전입니다. 한창 시즌일 때 1년에 40회 이상 고객분들을 마추픽추로 안내했습니다. 대충 계산해도 800~1000번은 넘게 맞추픽추를 다녀온 셈입니다. 기네스북에 올라도 되는 횟수죠”

 

최근 페루의 서울여행사 지수일 대표 겸 여행작가가 ‘마추픽추의 시간을 걷는 사람’이라는 신간을 내놨다. 지난달 16일 서울관광재단에서 지작가의 오랜 단골손님들과 여행사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북콘서트를 가졌다. 그 현장에서 지작가를 만났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09년에 겪었던 일이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그 당시 나스카 지상그림(Nazca Lines)과 관련해서 나름의 결론을 SNS 게시글로 올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나스카 관련 글이 있는 걸 보고 호기심에 클릭해서 보다가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내 글을 도용해서 그대로 복사해서 게시한 것이었다.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써놓은 글들을 기록으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도용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히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가 살아온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책은 17년 동안 쓴 책이 아니라, 17년이 지나서야 쓸 수 있게 된 책인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이 왜 『마추픽추의 시간을 걷는 사람』인가

 

마추픽추를 걷는다는 것은 공간의 이동이지만 마추픽추의 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그 공간에 남아 있는 과거와 사람들의 삶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추픽추에 가면 아름다운 풍경과 정교한 석조 건축물을 본다. 그런데 나는 ‘그 돌을 쌓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또 그들이 살았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그 질문을 따라 수백 년 전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서 내가 걷고 있는 것은 마추픽추라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사진  에디터 사진

사진 왼쪽부터 지수일 페루 서울여행사 대표, 신간 ‘마추픽추의 시간을 걷는 사람’, ©세계여행신문

 

 

-저자에게 마추픽추는 어떤 의미인가

 

마추픽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준 곳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니 풍경 뒤에 숨겨진 역사가 궁금해졌고,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다 보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마추픽추를 수없이 찾아 갔지만 아직도 그곳에 다 도착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달라질 때마다 마추픽추도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마추픽추를 800차례 이상 방문하고도 여전히 특별한 이유는

 

'오늘은 마추픽추 말고 다른 데 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같은 마추픽추인데도 매번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날씨가 달라서이기도 하고, 계절이 달라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보았던 마추픽추와 지금 보는 마추픽추는 같은 곳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여행객들과 함께 간다. 그분들의 질문과 감탄을 통해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마추픽추를 수백 번 다녀왔다기보다, 수백 번 새롭게 만났다고 생각한다.

 

 

-가이드로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새롭게 전달하는 비법이 있나

 

나에게는 처음 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익숙한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여행에서 듣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특별한 날인데, 내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심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청중의 표정과 반응에 따라 나 역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비법이라기 보다, 매번 처음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다시 이야기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과 페루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목표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데 익숙하다. 반면 페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현재의 시간과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조금 더 여유로워져도 좋겠고, 페루 사람들은 조금 더 시간을 소중히 여겨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자가 책의 내용이 틀렸다고 지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십 년 동안 페루를 공부하고 안내해 왔지만, 그렇다고 페루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라는 것은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거나 기존의 해석이 바뀌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도 달라질 수 있다. 독자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면 기꺼이 듣고 배우겠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틀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것은 가이드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가이드가 아닌 여행객으로 돌아간다면 어디를 가고 싶나

 

아마도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작은 마을로 가고 싶다.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특별한 설명 없이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고 싶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골목길을 걷고, 작은 식당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동안은 늘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듣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가장 새로운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무엇이 남았으면 좋겠나

 

물론 이 책을 통해 페루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따로 있다. 내가 오랫동안 여행객들에게 일관되게 전해 왔던 메시지가 하나 있다.

 

"여행은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 그리고 배려를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낯선 풍경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이전보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면, 저자로서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

 

<류동근 기자> dongkeun@g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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